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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을미사변과 일본정부의 개입에 대한 논문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22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을미사변과 일본정부 개입에 대한 증명`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내용, 형식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구요.
역사학 공부하시는 분들 도움되시겠네요.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을미사변 이전의 조선정황과 발단 원인

1) 청 · 러의 대립과 조선과 러시아 수교
2) 청일 전쟁의 발발과 이노우에의 주한 공사 좌천
3) 삼국간섭과 러 · 일의 대립

2. 민 왕후의 ‘인아거일’ 책과 일본정부의 왕후 시해계획

1)민 왕후의 ‘인아거일’ 책과 일본정부의 대 조선방략
2) 이노우에 가오루와 ‘칼잡이’ 미우라 고로

Ⅲ. 결론

본문내용

2. 민 왕후의 ‘인아거일’ 책과 일본정부의 왕후 시해계획
1)민 왕후의 ‘인아거일’ 책과 일본정부의 대 조선방략
민 왕후의 ‘인아거일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흔히 ‘인아거일’은 왕후가 3국 간섭에 굴복한 일본의 약세를 틈타서 실행에 옮긴 기민하고도 빈틈없는 조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렇지만 러 · 미의 아시아 정책과 국제 정황의 급격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이를 하나의 허상으로 만들고 말았다. 일본의 국제적 지위는 간섭 이후 2개월도 지나기 전에 러시아의 대청차관협정에 반감을 품은 독일이 거꾸로 일본을
또 40년 일왕 히로히토 생일에는 “1억 민초는 항상 황은의 광대심후함에 감격을 새롭게 하고 봉응경앙의 염을 굳게 하거니와 국민은 산업달성 시간 근복에 경일층의 결심과 각오를 함으로써 빨리 성업을 완성시켜 예려를 봉안하고 성지에 봉부하는 것이 1억 국민의 총중이 아니면 안 된다” 고 거듭 맹세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제에 저항다운 저항의 흔적을 보여주지 못한 채 너무도 무력하게 굴종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극렬한 친일논조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와 동화일보는 40년 8월 10일 함께 폐간된다. 일제가 조선어말살정책과 전시 하 물자절약 차원에서 결행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조선어 신문은 해방되기까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만 존재하게 됐다.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 사주 동아일보 김성수는 매일신보에 학병 출전을 독려하는 논설을 쓰는 등 친일행위를 계속한다.>

Ⅲ. 결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일제 강점 하에 민족지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항일적인 제작태도와 이에 걸 맞는 논조를 보인 때도 있었으며, 또한 조선의 민중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민중의 표현기관, 또는 민족진영의 구심체로 인식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로 감에 따라 이러한 민족지로서의 모습은 퇴색되고 친일 성향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한 신문은 “족벌신문들은 이제껏 스스로 민족지이다, 정론지이다, 하고 외쳐왔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라고

참고 자료

논문 ‘명성황후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최문형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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