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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려시대 부병제설과 군반제설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22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고려시대 부병제설과 군반제설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내용 형식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구요. 역사학 공부하시는 분들
도움되시겠네요.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府兵制說
1) 府兵制說이란
2) 부병제설에 대한 論據
3) 부병제설의 問題點

2. 軍班制說(軍班氏族制說)
1) 군반제설과 그에 대한 논거
2) 군반씨족제설의 문제점

3. 두 說의 절충안, 京ㆍ外軍 混成制說의 등장

Ⅲ. 결론

본문내용

3) 부병제설의 問題點
부병제설이 이렇듯 납득할 만한 논거를 제시하고는 있지만 이에 반해 몇 가지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점들도 있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면, 첫째 중앙군으로 편성된 군인들 가운데 番上立役하는 농민군들이 포함되어 있었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앙군 전체가 그런 부류의 군인들로만 편제되었다는 확증은 없다. 고려의 시대상황으로 보아 국왕에 대한 경호나 도성수비등은 지방에서 번상입역하는 농민군들에게는 부여될 수 없는 성격의 임무들이었다. 따라서 개경에는 틀림없이 일정 규모의 전업적 군인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이들의 군역은 당시 신분제사회의 속성상 세습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업적이고 세습적인 군인들이 「軍班氏族」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군인전은 文武兩班 및 軍人田柴科 체제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즉 각 급의 문무양반 관료들이 이 전시과 체제에서 지급 받는 소정의 토지는 그들 토지의 실제 경작농민들로부터 조를 받을 수 있게끔 되어 있는 收組地였다. 그렇다면 군인들에 대한 토지도 수조지 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병제설은 전시과체제 안에서 유독 군인전만을 군인들의 自耕免組地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군인전을 받는 군인들이 번상입역하는 농민군들이었다는 결론과는 부합되는 개념이지만 수조지 지급을 원칙으로 한 전시과 제도의 기본 성격과는 맞지 않다.
셋째로 국가가 番上 농민군들 모두에게 免稅權을 지급했다는 당시 高麗의 사회 여건에 비추어 볼 때 그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번상입역하는 농민군에 대한 조세변제권의 지급과 같은 조치는 봉건적인 국가 권력의 속성상 상당히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재정 형편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발달된 사회상을 보여주는 朝鮮時代에도 번상입역하는 농민군에게도 이러한 면세권이 지급되지는 않았다.

2. 軍班制說(軍班氏族制說)

1) 군반제설과 그에 대한 논거
앞서 부병제설에서는 군반을 중앙군으로 선발된 농민군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군반씨족제설에서는 군반을 세습적·전문적 군인들로 파악하였다. 군반씨족제설의 요지는 2軍·6衛 군사들 모두가 세습적ㆍ전문적으로 군역에 종사하는 특정한 씨족, 즉 「軍班氏族」 출신의 군인들로만 편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개념은 軍班은 세습적·전업적 군인이었고 중앙군은 모두 군반으로 편성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까닭은 <高麗史>에 나오는 다음 기사로부터 시작된다.

『 (文宗 18년) 兵部에서 아뢰기를,

참고 자료

이기백 『高麗 兵制史 硏究』 일조각 1999
한국중세사학회 『軍事制度』 늘함께 1997
장동익 『高麗史의 諸問題』 삼영사 1986
박용운 『高麗時代史』 일지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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