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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와 실력양성론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21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일제하 실력양성론을 윤치호 일기를 중심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실력양성론이 가진 한계를 주로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가진 선입견을 배제하고 일제하에서는 타협 또는 비타협 민족주의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의 실력양성론
1. 안창호의 실력양성론
2. 이상재의 실력양성론
3. 윤치호의 실력양성론

Ⅲ. 흥업구락부와 윤치호
1. 흥업구락부의 성립배경
2. 윤치호와 흥업구락부

Ⅳ. 1938년 이후 윤치호의 친일논리
1. 윤치호의 내면논리
2. 일제의 파쇼정책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개화기 근대적 지식인으로서 한말 개화, 자강 운동의 핵심인물이었던 윤치호. 일제시기 여러 단체의 주요직에 있었으며 조선감리교의 대부였던 그를 대부분 친일파라고 평가한다. 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주로 1938년 이후 나타난 행적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는 38년의 적극친일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바탕으로 1910~30년대의 윤치호까지 동일하게 규정짓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기존의 저항적 민족주의 관점에 근거한 견해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윤치호를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 친일 행위를 바탕으로 윤치호의 내면세계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38년의 적극 친일 이전의 내면세계를 고찰하여 왜 그가 결국 친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밝혀 보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기존의 윤치호의 대한 평가는 실력양성론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맞닿아 있다. 기존 학계에서는 실력양성론에 대해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의 논리의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그들의 사상으로 인해 일제 후반기에 친일로 돌아선다.” 라고 설명하며 민족개량주의노선이라는 비판적인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친일이라는 결과로 실력양성론 전체를 한정지음과 동시에 실력양성론의 다양함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우리는 본 연구를 통해 윤치호에 대한 기존의 가치 판단이 개입된 시각에서 벗어나 그의 실력양성론을 초기부터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그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기독교’라는 기재를 발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실력양성론과 친일논리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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