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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고구려의 발전 - 대왕전제체제의 수립과 발전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21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삼국 가운데 고구려의 발전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특히 초기적 고대국가의 특질을 탈피하여 대왕전제체제를 확립하고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기존 연구자중 노태돈의 학설을 일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면서
2. 지배체제의 정비 - 율령과 불교의 반포
3. 통치영역의 발전
가. 광개토왕릉비
나. 영역확장
다. 전쟁수행 양태의 변화
라. 고구려인의 천하관
마. 광개토왕릉비와 임나일본부설 논란
4. 대왕전제체제의 발전 - 평양천도
가. 천도의 배경
나. 천도의 영향
5. 마치면서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면서
삼국의 국가형성은 바로 小國共同體의 누적적 병합과정이었다. 중심부 소국이 주변부 소국을 복속시킴으로써 영역성과 계급성을 갖춘 고대국가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중심부 소국은 전쟁 또는 교역을 통해 국가형성에 필요한 영역적 기반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수장과하호가 각각 재분화함으로써 계급관계를 성립시킬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현실적 능력을 갖춘 왕이 등장하였고, 그에게 초월적 권위를 부여할 신화가 생성되었다.
삼국시대에 왕이 제도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더라도, 왕의 권력은 소국의 병합에서 기인하는 귀족세력과의 관계에 의해 달라졌다. 국가형성 이후의 삼국은 크게 보아 두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그 하나는 토지와 인민이 결합된 통치영역을 확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역통치의 효울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배체제를 정비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고구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졸본의 소국에 지나지 않았던 고구려는 동명왕이래 주변 소국과 那집단의 복속을 통하여 고대국가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고구려의 형성이 소국 병합의 산물이었으므로, 재지기반의 수장층은 왕경의 지배자공동체에 누층적으로 편제되었다. 이들은 왕족, 왕비족, 전왕족 등과 함께 귀족세력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인 귀족회의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영역확대와 지배체제의 발전은 상승적 결합관계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소국의 병합으로 인한 국가 영역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지배체제의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대왕전제체제였다.
본고에서는 고대사회에서 국가 완성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대왕전제체제의 형성과정과 결과를 『삼국사기』고구려본기 6­8과 광개토왕릉비에 새겨진 금석문 사료를 통해 살펴보고자한다.

2. 지배체제의 정비 - 율령과 불교의 반포

a. . 처음으로 율령을 반포하였다.
(『삼국사기』권18 고구려본기 제6 소수림왕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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