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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박정희군부와 5.16군사정변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21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박정희군부가 초기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961년 5월 16일 오전 3시경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해병대, 공수단, 제23사단은 한강어구에 다다른 후 서울 진압을 저지하는 헌병들과의 총격전에서 승리하였다. 그리고 오전 5시에 방송을 통해 6개 항목의 혁명 공약 발표했고, <군사혁명위원회>는 오전 9시에 포고령으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리고 오후 7시에는 정권인수를 발표했다. 그리고 장면 총리가 내각 총 사퇴와 혁명위원회에의 정권이양을 의결하고, 윤보선 대통령도 혁명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협조를 호소함으로써 혁명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위에서 말한 것은 5.16군사정변(옛,5.16 군사혁명)에 대한 전개 과정이다. 위에서 보듯이, 5.16 군사정변은 확실히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후 정권장악은 역사에서와 같이 박정희 중심인 정권체제로 확실히 이루어진다.
그럼 왜 박정희의 군사정변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리고 박정희가 이끄는 군부는 왜 성공적으로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
그러한 것을 보기 위해서, 브라질과 와 프랑스 5공화정에서의 군부의 성향을 살펴보겠다.
1966년 당시 ESG가 배출한 민간인들이 걸쳐있는 분야
군장교
상업계 출신
정부기관요원
연방의회의원
판사
교수.경제학자.의사.카톨릭성직자 등등
599명
224명
97명
39명
29명
107명
우선, 브라질에서 군사기관들은 혁명적 저항을 고무하는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을 연구하고 반란적 소요를 진압하거나 방지하기 위한 강령과 훈련방법을 고안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고도로 직업화된 군부엘리트들은 정치문제들에 점점 더 큰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국내소요와 안보에 대한 지대한 관심 때문에 브라질의 많은 군사제도들이 제도적 직업화와 발전을 촉구했다. 그러나 주어진 정치 환경(라틴아메리카의 불안정한 사회상황) 속에서 브라질의 군사지휘자들은 이제 직업적 군사전문기술이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필요한 것으로 믿게 되었다. 기능적 전문화를 증대시키는 대신 군부엘리트들은 이제 사회.경제.정치문제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국내 안보문제에 대한 전문 기술을 획득하도록 장교들을 훈련시켰던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군사교육기관들이 설립되어 신직업주의 개발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그것이 ESG(최고국방대학)이었다.

참고 자료

조영갑의 민군관계와 국가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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