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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에비타, 에바 페론 그녀의 삶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21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에비타, 에바 페론 그녀의 일생에 대해 소개와 느낀점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런 호황 속에서 추진된 개혁 입법들은 퍼스트 레이디였던 에바의 입김 속에서 추진된 일들이었고, 노동자와 여성, 빈민들은 그녀를 성녀로 떠받들기 시작했다. 이 아름답고 총명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우호적인 그녀에게 열광했고 적극적인 지지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그 후 페론주의와 아르헨티나는 점차 독재의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1948년에 이르자 페론은 자신의 정치 이념을 「정의주의(Justicialismo)」라고 포장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에바 역시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사랑을 이용하여 남편과 자신을 포장해나갔고, 대중이 원하는 것들을 즉흥적으로 선사하기도 했다. 에비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서 학교, 병원, 고아원을 단기간에 전국에 건립했다. 이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정책 덕분에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독재의 칼날을 휘두를수록 이들 부부는 점점 더 자신들을 조여오는 반항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군부를 강화함으로써 권좌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군부도 이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페론 정권의 시혜적인 사회복지 정책은 개혁적이어야 할 노동자들을 당장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마비되도록 했고, 그들을 중독시켰다.
에바 페론의 진보적 여성 정책들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여성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그녀가 일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바 페론이 반드시 그런 의식을 가지고 여성의 권리를 향상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여성 운동 확장과 여권 신장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면서도, 결국 그렇게 해서 달성된 결과물들을 자신의 남편인 후안 페론에의 충성으로 귀결시켰다. 그녀는 틈만 나면 여성 당원들에게 이렇게 강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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