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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운동사]민족해방과 노동운동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19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본문내용

1945년 8월15일. 마침내 일본제국주의는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였고 우리나라는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해방의 감격과 환희가 넘쳐났습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하였죠. 그러나 우리 민족의 새로운 비극이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어요. 해방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된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점령하고, 특히 남쪽에 들어온 미국이 사회주의 확산을 두려워 한 나머지 1945년 9월6일 일방적으로 남한 군정을 선포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는 민족의 자주적인 대표기구로서 ‘건국준비위원회’와 산하 ‘인민위원회’가 수립되어 있었죠. 그러나 미국은 이를 전면 부정하고 미군정이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미군정은 일제하의 조선총독부 기구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일본인의 재산 보호령을 발동하고 해방이 두려워 잠복한 일제 앞잡이들을 불러내 관리로 등용하기도 했죠. 사실상 우리나라는 해방된 것이 아니라 일제와 미군정이 점령자로서의 자리를 바꾸었을 뿐이었던 겁니다.

미군정은 일제의 각종 탄압법을 폐지하고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허용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정치 사회활동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었지만, 그 내부에는 친미 보수 우익과 사회주의 좌익, 민족주의 세력간의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죠.

경제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혼란스러웠어요. 가난과 배고픔은 가장 큰 문제이었죠. 일제하의 산업이 전쟁을 위한 군수경제체계였기 때문에 급속히 평화적이며 자주적인 경제체제로 바꾸기 어려운데다가 각 기업체의 기술자나 관리인들이 대부분 일본인들이었기 때문에 공장 문을 닫거나 작업을 단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생활물자가 부족하고 물가가 폭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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