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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운동사- 일제하 노동운동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1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본문내용

조선 노동계급과 일본의 일대 격전
1920년대에는 일본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와 공장을 많이 세웠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임금은 기아임금이라 할 만큼 낮았고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작업조건 때문에 노동자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노동자의 투쟁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났고 점차 조직적이고 강인한 모습으로 변화하였어요.

노동조합은 계급성을 강하게 띠면서 전국적인 통일 단결을 지향하게 되었죠. 일제는 1925년 치안유지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을 억압하였지만 노동자들은 오히려 더 완강하게 저항하였습니다. 1920년대 말에 이르면 노동자들은 작업장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지역별 직종별로 동맹파업을 벌이는 통일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제는 치안이 안정되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노동쟁의를 축소하여 집계하였습니다만 그런데도 노동쟁의는 1921년 36건에서 매년 증가하여 1925년 55건, 1929년 102건에 이르렀습니다. 참가한 노동자도 1921년 3,400여명에서 1925년 5,700여명, 1929년 8, 200여명으로 급증하게 됩니다.

격화일로의 노동쟁의(1920년대)
노동자들의 큰 투쟁은 1921년 9월 부산 부두에서 시작됩니다. 부두노동자 5천여명은 운송업자들이 임금회복 약속을 안 지킨데 항의하여 열흘 동안 동맹파업을 벌였습니다. 일제 경찰과 운송업자들은 노동자들을 위협하였으나 노동자들은 동맹파업을 계속하여 경찰과 업주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이 투쟁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노동야학을 통해 맺어진 지식인과 노동자들이 사전에 계획하여 성사시킨 것입니다. 이 투쟁은 이후 부산 절영도 일대의 각 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에 영향을 미쳤고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촉진시켰습니다. 1922년말 경성의 양화직공 280여명은 임금을 깎으려는데 대항하여 동맹파업을 벌입니다. 직공들은 조선노동연맹회 지도 아래 20여일 동안 파업을 계속한 끝에 마침내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고 다시 취업을 인정하게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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