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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감상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19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책의 선택배경
-책의 내용(줄거리, 요약)
-책의 내용해석(의미분석)
-책을 읽고 감상.

본문내용

장미의 이름이란 책 소설의 배경은 14세기 이탈리아의 베네딕트파 수도원입니다.
당시는 아비뇽 유수라고 해서 로마 교황청이 아비뇽에 옮겨가 있던 시기로서 이때의 교황은 요한 22세였습니다. 때문에 교황청은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왕과 경쟁 관계에 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자연히 교황과도 대립하는 형태가 되어버립니다.
13세기에 성 프란체스코가 청빈 사상을 중심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설립한 이후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서 정식으로 인가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내세우는 청빈 사상은 재력과 권위를 통해 세속에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황청과 기존의 수도회들에게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자에서 소집되게 되고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한 프란체스코 파의 입장을 정리하여 선언하게 되는데 이것을 페루자 헌장이라고 합니다.
페루자 헌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물건을 소유했던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할 수도사들 역시 재물을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황으로서 황제의 임명권까지도 교황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요한 22세는 이 헌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1323년에 회칙을 발표하여 프란체스코 파의 선언을 묵살해버립니다.
요한 22세는 청빈을 지지하며 교황권에 도전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몇몇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몰았고 이로 인해 이미 교황과 크게 대립하여 파문당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드비히와 프란체스코 수도회간에 연대가 이루어져서 황제파가 형성되게 됩니다. 거기에 프란체스코 수도회 내부에는 청빈을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엄격주의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황파와 황제파의 대립을 역사적으로 구엘프와 기벨린의 투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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