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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신라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1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신라시대 선덕여왕에서부터 무열왕의 아버지인 비형랑 까지의 이야기.

목차

하늘이 준 옥대를 찬 진평왕
향기가 나는 선덕여왕
마지막 성골 진덕여왕
새로운 왕실의 싹 비형랑

본문내용

하늘이 준 옥대를 찬 진평왕
신라 26대왕인 진평완의 본명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과 같은 백정이다. 그의 부친은 징흥왕의 장자인 동륜이며 어머니는 진흥왕의 누나인 만호 부인이다. 동륜은 세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각 백정 백반 국반이었다.
여기서 보면 당시 신라 왕실이 자신들을 석가의 일족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체계화된 대승불교는 고구려를 통해 신라에도 큰 영행을 주고 이 대승불교에서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는데 고대왕굴시대에 불교적 덕을 갖춘 이상적인 왕인 진륜성왕과 부처님을 같은 존재로 여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의 윤회설을 접하게 되면서 신라 왕실은 자기들이 진륜성왕으로 불교를 일으킨 만큼 석가족이 윤회하여 자신들로 태어났다는 자기 확신과 암시에 빠졌을 수도 있는데 이는 신성하고 위대한 왕실에서 석가불을 낳을 수도 있다는 믿음과 자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불교가 공인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승려들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왕실의 권위를 종교적으로 높이는데 혈안이 되었을 것인데 그 들이 신라 왕실이 곧 석가불의 종족이라는 진종설을 찾아내 왕에게 전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복승 갈문와의 딸 마야부인과 백정의 결혼은 진종설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진흥왕이 죽고 진평왕은 어리다는 이유로 사륜에게 왕위를 넘겨주지만 그의 부친이래 그를 중심으로 기울어 있던 진흥왕 말년의 정계의 역학관계를 기반으로 진지왕을 폐하고 왕위를 되찾았는데 그의 나이 9~13세경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보면 그가 대단한 거구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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