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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해외무장투쟁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6.12.18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1. 머리말
2.봉오동전투
3. 청산리전투
4. 청산리 독립전쟁의 결산
5. 홍범도(부대)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의의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한국 무장독립운동사에서 독립군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가장 규모가 컸고, 가장 크게 승리한 전투였음을 모두 아는 바이다.
그래서 봉오동전투 ・ 청산리전투에 대한 발표를 통해 이 두 대전투(또는 독립전쟁)의 경과를 간략히 정리하려고 한다.

2. 봉오동전투
함경북도 라남(羅南)에 사단본부를 두고 있던 일본군 제19사단은 일본군이 ‘삼둔자전투’에서 패전한 데에 크게 분개해서 안천(安川) 소좌가 지휘하는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편성하여, 두만강을 건너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는 독립군 근거지인 간도의 화룡현 봉오동까지 들어가서 독립군을 섬멸하고 오도록 하였다.
독립군측은 이에 앞서 최진동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과 안무가 지휘하는 국민회군(대한국민군)이 상당한 기간의 협의 끝에 1920년 5월 28일경 합동에 성공하여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라는 이름의 연합부대를 편성해서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근거지인 봉오동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흥수가 지휘하는 대한신민단 독립군 60여 명의 1개 중대도 대한북로독군부와 연합작전을 펴면서 봉오동에 주둔하고 있었다.
대한북로독군부와 신민단의 독립군 연합부대가 봉오동 일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일본군 제19사단의 안천추격대대가 독립군을 추격하여 봉오동 골짜기 입구까지 찾아 들어온 것이다. 대한북로독군부 부장 최진동과 사령부장 홍범도는 일본군 1개 대대가 독립군 소부대를 추격하여 봉오동 주민을 대피시킨 후에 제1중대장 이천오는 중대원을 인솔하고 봉오동 윗마을 서북단에, 제2중대장 강상모는 동산에, 제3중대장 강시범은 북산에, 제4중대장 조권식은 서북남단에 매복하여 일본군을 기다리게 하고, 사령부장 홍범도 자신은 2개 중대를 이끌고 서산분단에 매복하였다. 이흥수의 대한신민단 독립군은 일본군이 진입해 들어오는 남단에 매복하였다.

참고 자료

・ 『의병과 독립군의 무장투쟁』, 신용하, 지식산업사, 2003.
・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장세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7.
・ 『독립군 항쟁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5.
・ 최문식, 「반일 무장 투쟁의 최고봉 - 1920년」, 경남대학교인문과학연구실, 1996.
・ 임황주, 「만주지역의 무장독립운동에 관한 연구」, 건국대 대학원, 1982.
・ 오세창, 「재만한인의 항일독립운동사연구」, 성균관대 대학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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