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권력구조로의 회귀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18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머리말
2. 힘의 대결
3. 제2차 세계 대전의 사상적 기반
4. 전후평화의 비전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전쟁이 다만 전장에서의 살육이나 도시의 파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이나 사고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1939년에 시작된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 대전의 사상적 배경을 조사하는 것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전쟁이 그때가지의 전쟁․평화의 개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그리고 전후 세계에 어떠한 논리를 전개했는가는 흥미 있는 과제라 할 수 있다.
본고의 2장에서는 힘의 대결에서는 1930년대의 평화가 의미가 없었고, 이것은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이였음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어, 3장에서는 민주주의가 파시즘과의 구별된 사상을 만들었고, 이 중심의 미국․영국이 일본과의 차이에 다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마지막 4장에서는 전후 평화의 비전을 제시함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여한 국가들이 전쟁을 중도에 포기 못했던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2. 힘의 대결
1939년 9월 유럽 대전이 시작하기 전에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여러 나라에서는 전쟁의 필연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적․심리적 준비가 되어있었다. 1934년에 니버는 “전쟁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아무도 그것에 대처할 방법을 몰랐다”라고 주장하였고, 5년이 지난 후에는 그와 같은 불신감이나 의심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진영은 군사력에 호소해서라도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적인 일본 세력에 대항해야만 한다는 견해가 이것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힘의 용인, 즉 전쟁을 긍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 배경에는 사상적으로 3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첫째, 1931년부터 1939년경까지 존재했던 ‘평화’는 의미가 없다는 평화에 대한 비판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소련 등 여러 나라는 독일․일본과 표면화된 싸움은 없었지만, 그와 같은 ‘평화’는 독일․일본의 군국주의 체제나 해외 세력 확장을 인정하는 것일 뿐, 전쟁의 위기는 결코 멀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파시스트 진영의 군사력, 경제력은 강해질 뿐이었다.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 평화 개념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나 전투적 국가 사이에 안정된 평화는 있을 수 없고 그와 같은 ‘평화’는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20세기의 전쟁과 평화, 이리에 아키라, 을유문화사, 2001.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