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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연구(생애를 중심으로)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18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고전작가론`이란 과목을 수강하고 제출한 레폿입니다.
한학기동안의 공부와 작가연구가 응축되어 있어서
남명 조식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은 도움이 많이 되실거예요 ^^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가. 남명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
나. 남명의 성인기 - 金海 山海亭에서
다. 남명의 장년기 -三嘉에서의 삶, 鷄伏堂과 雷龍舍를 짓고
1. 교육사상
2. 현실인식
라. 남명의 만년기 - 德山洞 山天齋에서
1. 학문사상
2. 현실인식

Ⅲ. 결론

본문내용

▶ 서론
- 남명 조식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 유학의 양대산맥을 이룬 인물이다. 그는 기묘사화 이후 산사에 들어가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장년기에 귀향하여 후진 양성에 열중했다. 이 때부터 그의 학문과 사상은 널리 알려져 사림의 종사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후 조정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모두 거절하고 처사로서의 고고한 삶을 살았다. 그의 제자들 대부분은 조선 선조대에 정치-학술계를 움직이는 주역이 되었고,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그의 일생을 전기적으로 접근하여 사상을 두루 살펴보고, 특히 그의 처사적인 면모와 스승으로서의 삶을 조망하여, 그것이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 논의하기로 한다.

▶ 본론
1. 南冥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
南冥 曺植(1501~1572)은 낙동강 우현에 위치한 경상우도의 대표적 학자이다. 그는 경상도 三嘉縣에 위치한 兎洞에서 출생했다. 그의 증조부는 安習으로, 안습은 문관으로 진출하려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그의 아들 彦亨과 彦卿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남명은 언형의 자식으로, 언형이 벼슬하러 나감에 따라 다섯 살 때에 서울로 이사하여 살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였고 재주가 뛰어나 공부에 힘썼다고 한다. 그의 나이 9살에는 모진 병에 걸려 부모가 걱정하자,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다 뜻이 있어 난 것인데 부모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며 오히려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10대 후반에 大谷 成運과 聽訟 成守琛, 이윤경 등 많은 친구를 사귀어 교류하였으며, 제자백가 ․ 천문 ․ 지리 ․ 의학 ․ 수학 ․ 병법 등을 두루 공부하였으며 관아에서 아버지가 하는 지방 행정에 대해서도 저절로 알게 되어, 행정체제의 불합리성, 아전들의 농간, 백성들의 곤궁상 등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자기 수양과 공부의 정진을 위하여 물을 담은 그릇을 받쳐들고 밤새 공부를 한다든지, 허리에 방울을 차고 다니며 자신의 정신을 맑게 하고 스스로 깨우쳐 바르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참고 자료

국역본 『남명집』
박기용 외, 『조식의 학문과 교육』, 진주교육대학교 진주 문화 교육 연구원, 2002
허권수, 『남명 조식』, 지식산업사 , 2001
허권수,『절망의 시대 선비는 무엇을 하는가』, 한길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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