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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영국의 국가(노래) 분석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17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300원

소개글

영국의 네 지방인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각국의 국가(노래)와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 쓴 글입니다.

목차

- 잉글랜드
- 웨일즈
- 아일랜드
- 스코틀랜드

본문내용

잉글랜드
1.국가적 정체성
잉글랜드인들은 유럽의 다른 국민들보다 훨씬 먼저 국민적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5세기에 브리튼 섬을 침입한 앵글, 색슨, 주트 등의 게르만 부족들은 원주민인 켈트인들을 서쪽으로 내쫓고 잉글랜드를 차지하였다. 731년 노섬브리아 출신의 성직자 성 비드(672/673-735)가 구전되는 초기 앵글로색슨의 역사를 정리하여 「잉글랜드인들의 교회사」를 저술하였다. 이때 “잉글랜드인들”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인종적 기원이 어떻든 간에 8세기 초가 되면 잉글랜드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정치적 통일의식이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0세기에 앨프레드의 후손인 웨섹스 왕가에 의해서 잉글랜드 왕국이 통일되면서 결속력이 더 강해졌다. 데인인들은 정착한 뒤 곧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상실하여 잉글랜드인 속으로 흡수되었다.
이처럼 종족적 기원이 다양한 잉글랜드 거주민들이 어떻게 공통된 법과 생활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한 요인들을 몇 가지 지적한다면,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브리튼이 비교적 크기가 작은 섬이라는 사실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머시아와 웨섹스 왕국은 대충 단일 왕국을 만들어 권력과 통제의 기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기독교와 교회가 통일의식을 가져다주었는데, 교회는 왕권을 신성시하고 지지함으로써 단일 왕국의 성립에도 기여하였다. 이렇게 확립된 왕정은 행정과 법률을 정비함으로써 민족체의 골격을 만드는데 이바지하였다. 10세기에 이루어진 지방행정단위인 주 의 창설은 부족적 정착지를 붕괴시킴으로써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공통어로 발달한 영어와 함께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항한 공통의 군사행동도 결속력을 다지는데 역시 이바지하였다. 이렇게 해서 앵글로색슨 시대에 이미 잉글랜드는 통일된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잉글랜드의 통일에 기여한 다른 요인들에는 중앙집권적 정부와 지속적이고 일관된 법 체제 그리고 의회라는 국민적 대의기관이 있었다. 앵글로-노르만 국가는 또한 잘 짜여진 군사 국가였다. 잉글랜드 같은 작은 나라가 브리튼 섬을 지배하고 갈리아의 넓은 지역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중앙집권체제의 응집력 있고 효율적인 국가가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정복자들은 앵글로색슨의 전통과 노르만의 발명품을 혼합해서 회계청, 보통법, 의회 등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제도들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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