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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빈민 걸인의 역사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17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1. 머리말
2. 유럽에서 부랑자의 등장 :
근대적 질서의 수립과 부랑자의 ‘타자화’
3. 미국에서 수용소의 발견 :
노동과 복종을 통한 훈육의 강화
4. 일본에서 수용소의 등장과 도시 빈민 정책 :
근대적 질서의 형성과 관련하여
5. 우리나라에서 부랑자 문제 :
근대 사회 형성과 관련한 합의
6. 맺음말

본문내용

유럽의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친 시기를 보통 ‘대감금’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유럽의 17세기는 무엇보다 경제적 위기가 고조된 시기였는데, 이러한 경제적 위기를 촉발시킨 원인으로 인클로저 운동과 신대륙으로부터의 은의 유입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위기는 대대적인 부랑자 창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부랑자들은 큰 사회 문제가 되었는데, 거리에서 떼지어 몰려다니면서 걸식과 부랑을 일삼는 이들의 존재는 사회 미관상, 위생상 큰 골칫거리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공간이 탄생합니다. 수용소는 부랑자, 빈민들만이 아니라 광인들, 실업자, 죄수 등을 함께 감금․수용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수용소는 제네랄 하스피탈, 즉 구빈원이라고 불리우는데, 거대한 병원, 수용소, 신앙 생활과 공공 질서의 확립, 원조와 처벌의 체계, 정부의 자선과 복지 정책의 수립, 이 모든 것이 혼합된 공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감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것은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걸까요? 16세기 이전에는 부랑자, 즉 난폭하고 불결하며 악한 집단들로 인식되는 이들이 사회의 일반 성원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들의 생활방식은 상층부의 생활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어느 정도의 문화적인 교류와 교감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진실로 사회가 배제하는 자로서 배척되었던 것은 나병과 같은 신의 형벌이라고 여겨진 병에 걸린 사람들 정도였습니다. 빈민이나 광인도 당시는 배제된 자가 아니었습니다. 빈곤이란 신의 하사품이고, 자비를 베푸는 것은 부유한 자들의 의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근대성의 경계를 찾아서,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새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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