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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여름, 부산의 정치전쟁- 부산정치파동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17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부산정치파동에 대한 배경과, 전개과정, 이후 정치사적으로 갖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부산정치파동의 배경
Ⅲ. 부산정치파동의 전개과정
Ⅳ. 부산정치파동의 성격
Ⅵ. 부산정치파동의 정치사적 의미
Ⅶ. 맺음말

본문내용

Ⅰ. 서 론
1952년 여름, 피란수도 부산에서는 전선에서 벌어지는 전쟁(戰爭)과는 또 다른 피를 말리는 정치 전쟁이 벌어졌고, 정치전쟁은 군사 전쟁의 와중에서 더욱 격렬해졌다. 어찌 보면 전쟁마저 정치의 연장인 듯 보였다. 흔히 ‘무혈혁명의 성공’이라 불리는 이 정쟁(政爭)은 이승만의 승리로 끝났고, 이 사건은 후에 ‘부산정치파동’이라 불리게 된다.
부산정치파동은 흔히 이승만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와 사회․행정부와 의회의 관계와 정당의 성격 등이 바뀌었으며, 나아가 당시의 갈등요소들인 누가 집권할 것인가,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라는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둘러싼 논쟁, 행정부와 의회간의 알력, 보수진영 내에서의 이승만과 반 이승만 세력사이의 갈등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정리되는 계기였다. 또한 헌정질서에 있어서 집권자가 헌법을 개정하여 집권연장에 성공하였고, 계엄령으로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였으며, 군부가 국내정치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개입을 고려한 사건이었다.
이에 본보고서에서는 부산정치파동의 전개과정과 이 사건의 본질을 국내외적 상황에 비추어서 분석해보고, 이 사건이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 있어서 어떠한 의의와 성격을 가지는지 조명해 보고자 한다.
Ⅱ. 부산정치파동의 배경
8․15직후의 한국사회는 한마디로 격동기였다. 당시의 정치활동은 민족적․계급적 모순에 따른 갈등과 투쟁의 양태를 첨예하게 띠면서 매우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다. 정부수립을 전후한 일련의 무장유격투쟁, 1950년 5․30 제2대 총선거 등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기반은 이미 크게 흔들리던 상황이었다.
특히 5 ․ 30 총선거의 결과는 한마디로 무소속의 대거진출과 기성정당의 약화라고 할 수 있다. 재선의원이 29명에 불과한 가운데, 무소속이 총 의석수 210석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126석을 차지했고 여당적 입장의 대한국민당(24석), 국민회(14석), 대한청년당(10석), 대한노총 등이 총 57석을 차지했다. 야당적 입장의 민주 국민당(24석), 사회석(2석), 민련(1석)등은 총 27석을 차지했다. 이 선거결과로 분명해진 사실은 이 선거를 통해 기존정당 정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극명하게 표출되었고, 내부구성에 있어서 민국당의 몰락과 중간파의 진출이라는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다. 또한 이승만을 지지하는 여당세력은 총 210석 가운데 57석에 불과한 것이 큰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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