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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 아시아나 박인천 회장의 기업가 정신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17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금호 아시아나 창립자 박인천 회장의 삶과 기업가 정신

목차

1. 錦湖의 성장과정과 사업실패기
1-1. 錦湖 朴仁天 會長의 출생과 청소년기
1-2. 事業의 시작과 거듭되는 失敗
1-3. 公職진출과 예고된 辭職

2. 錦湖아시아나의 출발
2-1. 錦湖 아시아나의 씨앗 - 택시 두 대
2-2. 광주택시
2-3. 錦湖高速의 출발
2-4. 全南製絲 인수
2-5. 버스路線의 擴張
2-6. 錦湖타이어의 시작
2-7. 光州旅客에서 光州高速으로..
2-8. 錦湖石油化學
2-9. 錦湖實業株式會社
2-10. 朴仁天 會長의 就任과 逝去

3. 朴仁天의 企業家 精神
3-1. 定道를 걷는 企業人
3-2.

본문내용

1-1. 錦湖 朴仁天 會長의 출생과 청소년기

錦湖 朴仁天 會長은 1901년 7월 5일 전라남도 나주군 죽포면 동산마을에서 부친 朴湖公 玉容(1866~1907)과 모친 金海 金氏 賢金(1869~1958)의 4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錦湖가 일곱 살이 되던 1907년, 朴湖公이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떳다. 불의에 가장을 잃은 가족들은 암담했으며, 이 무렵 조선 지배를 본격화한 일제의 수탈과 잦은 흉년으로 생활을 어렵기만 하였다.
錦湖의 예명은 在坤이었다. 유달리 성미가 불같고 고집이 세어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였는데, 한편으로는 마음씨가 따뜻하여 늘 동네 또래를 이끌고 다녔다.
재곤은 열한 살이 되던 해부터 書堂에서 漢學을 공부하였다. 특유의 오기와 총명함으로 항상 제일 앞서는 성적을 차지하였고, 열다섯 살 무렵에는 면내 八賢講堂에서 주최하는 講經試合에 출전하여 大學부문 최우수에 뽑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급속하게 開明하는 세상을 보면서 점차 舊式 漢學공부에 限界를 느낀 재곤은,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說得하여 17세가 되던 1917년 4월 羅州公立普通學校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2월, ‘日人校長 排斥運動’에 가담했다가 퇴학을 당하고 만다.
결국 재곤은 上京을 결심하고 집안의 農牛를 처분한 돈 40圓을 가지고 가족들 몰래 서울로 향하여 1919년 가을 中東學校 初等科에 입학하지만 學資金 조달이 막히자 상경 6~7개월 만에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참고 자료

금호아시아나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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