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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십이곡의 구조

저작시기 2005.10 |등록일 2006.12.16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도산십이곡의 내용의 고찰과
지은이 이황에 대해 서술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서언
2. 跋文의 분석
3. 시조의 검토
4. 溫柔敦厚(온유돈후)의 實(실)
5. 결 언

본문내용

◎ 이황
이황(1501~1570)은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이며 연산군 7년에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온혜리에서 7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20세 때에는 잠 자는 것, 밥 먹는 것도 잊고 『주역』을 읽었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성리학의 탐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1세에 결혼하여 27세 되던 가을에 향시를 비롯하여 진사회시(28세), 문과별시(32세), 경상도 향시(33세)등을 거쳐 34세 때(중종 29년) 대과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관직을 맡게 된다. 이때는 조광조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조정을 떠난 지 오래되고 바른말 하는 관료들도 드물었으나 이황은 43세 까지 관직에 머무르며 정치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사화가 끊이지 않았고 이황 자신도 사화에 연루되어 관직을 내 놓은 적조차 있었던 복잡한 사회였으며 이런 사회에선 관리보다는 학자로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기에 43세에 관직을 버리고 53세까지 많은 관직을 제수 받지만 지병등을 이유로 거듭 사퇴하였으며, 이 10년동안은 그에게 벼슬길에서 환향하는 길로 되돌아가는 과도기적 시기라 할 수 있다. 또 53세부터 죽을 때까지는 예조판서 등 높은 벼슬을 내려도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거두어 주길 간청하고 고향을 떠나지 않았으며 교육과 저술에 전념했다. 이황의 저작은 무수히 많으나 대표적인 것은 『주자서절요』, 『자성록』, 『성학십도』, 『도산십이곡』등이 있다.

◎ 이황의 문학관
이황의 도학은 문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황은 중년까지 문학을 하다가 도학에 들어섰으며 도학을 시작한 후에도 문학에 대해서 계속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황은 벼슬살이를 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어서는 도산에 내려가 자연과의 화합을 체험하면서 심성을 탐구하고 기르며 학문을 수양했는데 문학의 문제도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이황은 자기의 본심과는 어긋나게 세상의 기준에 따라서 허덕이며 지낸 삶, 즉 본연지성을 버리고 기질지성에 매여서 살았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였으며 자연에서 도의를 즐거워하고 심성을 기르는 길을 택하겠다고 하며 이러한 생각 속에서 이황의 시는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황의 도산십이곡중 후육곡 중 5번째 ‘청산은 엇뎨야’를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李滉,『退溪 李滉』 우일출판사, 2001.
임소진,『退溪 李滉의 敎育思想 연구』, 경희대, 1978.
정순목, 『 (그는 누구인가)退溪評傳』 지식산업사, 1987.
정재호,『한국 시조 문학론』, 태학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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