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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생애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12.15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생애와 그의 업적에 대해서 많은 분량으로 조사한 내용.

본문내용

후일 대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아인슈타인이지만 결코 모든 과목에 좋은 성적을 거두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못하는 과목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암기하는 과목은 질색이었고 자연 과학 중에서도 생물학은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어학점수는 낙제를 면하지못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그가 53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76세로 죽을 때까지 23년간을 미국에서 생활 했지만은 영어를 완벽하게 마스터 하지 못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학자들끼리 토론을 하다가도 논쟁의 열기가 고조되면 무의식중에 독일어가 입에서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그는 뮌헨의 김나지움을 다닐 때 ‘학생의 자유로운 감정이나 학습태도를 파괴하고 독일제국의 권력 하에 획일적인 제도와 방침을 강요하는 현재의 학교에서는 권력에 맹종하는 비굴한 인간을 만들뿐이다 ‘ 라고 생각하고 뮌헨의 김나지움을 자퇴하고 맙니다. 김나지움을 퇴학한 그에게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연방 공과대학만은 특별했습니다. 이곳은 졸업한 학교에 상관없이 입학시험만 통과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었습니다. 그리고 연방공과대학은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유명한 대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쉽게도 첫 번째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스위스 북부에 있는 알가우 주의 아라우에 있는 주립대학에 들어가 직업과의 3,4학년을 거치게 됩니다. 주립학교를 마치고나서 연방공과대학의 시험에 합격해 이곳의 수학과 물리의 교원양성 부문에 입학이 허가됩니다. 그의 대학생활을 살펴보면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자신 있고 흥미 있는 과목은 수학이었지만 다른 과목들은 거들 떠 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학교로부터 강요적이고 획일적인 수업에는 땡땡이?를 치는 그런 모습도 보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레바 마르크를 만나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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