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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의 서예미학에 관하여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15 한글파일한글 (hwp) | 20페이지 | 가격 1,700원

소개글

항목의 서예미학에 관하여
-『서법아언』 연구-

목차

1.『서법아언』의 저술 동기 및 개요
2. 서통의 미의식.
3. 서여기인의 품격미
4.『서법아언』의 중화미
5.『서법아언』의 품평론과 창작론
6. 결론

본문내용

『書法雅言』의 저자 明代 萬曆년간 (1573-1620)의서예가. 자는 德純, 호는 貞元, 無心子이다. 秀水(지금의절강성 嘉興)사람으로 관직은 中書¹⁾를 지냈다
家學을 이었고 예술품 감상에 정통하며 서예에 능숙했다. 평생을 서예를 연구하며 王羲之를 마음으로 사모하고 본받으려 노력했다.²⁾ 서예작품으로는 ≪雙美帖≫이 있으며 서론상의 저서로는 『書法雅言』,『元貞子詩草』가 전한다. 項穆의 아버지 項元판은 서예 감정가로 이름이 높았다. 항목은 대를 잇는 감정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까닭으로 서예에 대한 막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王羲之를 중심으로 하는 서예관을 철저히 유지하였다.

1.『書法雅言』의 著述 動機 및 槪要

항목이 활동하던 당시 사회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었고 육왕심학³⁾이 흥기하여 內心의 주체적 도덕본성과 이에 따르는 행동을 중시함으로써 주체의식이 강화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서예 영역에서도 영향을 미쳐 趙孟頫의 帖學的 書統을 깨고 개인의 주체적 개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전환시켰다. 南宋 이래로 元代 심미사조가 회복되고 있었다. 道統을 유지하려는 항목으로 볼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이었다. 그리하여 中和이론을 역설하면서 왕희지 書統論을 다시한번 강조하게 된다. 그는 명대 서예가 趙 孟頫 書風의입장을 취하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帖學을 왜곡시켜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되는 反帖學 사조를 저지하고자 하였다. 이에 첩학 서통을 다시 정리하고 왕희지를 서통의 지존위치에 올려놓으며 이론서로 『書法雅言』을 저술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반첩학 사조는 첩학서통을 파괴하는 것이고 서예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것으로 여겼다. 올바른 서예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당대 손과정 이론을 다시 제창하고 조맹부를 정종으로 받드는 입장에서 벗어나 왕희지를 숭상하여 중화이론을 다시 회복하려 했다 .왕희지의 숭상을 통해 진으로 들어가는 것만을 명대 서예가 정도를 향하는 출발점으로 보고 “사람이 바르면 서예가 바르다”는 기본 사상을 발전시켜 서예를 높은 수준으로 까지 끌어 올렸다.
그의 서법이론서인 『書法雅言』은 모두 18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書統」,
「古今」, 「辨體」, 「形質」, 「品格」, 「資學」, 「附評」, 「規矩」, 「常變」, 「正奇」, 「中和」, 「老少」, 「神化」, 「心相」, 「取舍」, 「攻序」, 「器用」, 「知識」 으로 정연하게 체계화된 서예 이론서 이다 . 이 모든 단락은 서로 연계성을 가지고 있으며, 크게는 서예의 변화와 시대적 특색을 논하고 작게는 개개인의 개성이 서로 다름으로 인해 형성되는 風格의 차이를 연구하여 書藝의 哲理를 밝히고자 했다. 項穆의 중심적 예술론은 전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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