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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개화기 이인직 이광수 문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14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이인직과 이광수에 대한 평가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로 조선은 외래사조(外來思潮)와 외래문물의 범람에 직면했다. 이 같은 경이적인 사조들은 이들 생경(生硬)한 사조들을 거부하려는 이 땅의 강한 반발과 또 이들을 비판하여 동화 ․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의 조성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무시한 채 그대로 일부의 강한 뒷받침 속에 주입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 여건 속에서 문학 분야에 나타난 것이 이른바 ‘신소설(新小說)’이다. 그러므로 신소설은 재래의 낡은 소설인 구소설에 대한 대립개념으로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새로운 소설’이라는 의미를 띠고 나타난 것이다. 이 ‘신소설’이라는 용어 자체는 단순히 옛 소설에 대한 새로운 소설의 의미로 당초에 사용되어 왔으나 어느새 이것은 우리 소설문학을 분류하는 하나의 엄연한 술어로서 굳어지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1906년 이인직의 「혈의 누」가 발표되고서부터 1917년 이광수의 「무정」이 나온 후 1920년대까지를 신소설기로 잡는다. 신소설의 작가로는 이인직의 위시하여 이해조, 최찬식, 안국선, 김교제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인직이 그 대표격이라 하겠다.
이인직은 1862년 음력 7월 27일 경기도 음죽군 거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40세에 가까운 나이에 들어선 1900년 2월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었고, 같은 해 9월 일본 동경 간다에 있던 동경정치학교에 입학하여 정치학을 수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한 연구자에 의하여 이인직의 동경 유학 시절 활동이 소상하게 밝혀진 바 있다. 이인직은 일본 동경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당시 대중적인 신문으로 알려진 미야꼬신문사(都新聞社)의 견습생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01년 11월 26일부터 1903년 5월까지 대략 2년 6개월 동안 견습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실상을 일본에 소개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기사와 함께 자신의 일본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몇 편의 감상을 일본어로 작성하여 이 신문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의 첫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소설 「과부의 꿈」을 일본어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1903년 봄 한국정부는 재정난을 이유로 일본 유학생을 전원 소환하게 되었다. 이인직도 유학생 소환령을 따라야만 하였다. 그는 한국으로 귀국하기 직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신문을 창간하는 데에 앞장서겠다는 자신의 희망을 피력한 「한국 신문 창간 취지서」를 미야꼬 신문에 발표하였다. 1903년 7월 귀국한 이인직은 그해 12월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육군성의 한국어 통역관으로 임명되어 종군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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