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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황룡사와 분황사 창건의 배경과 의미 - 신라중고기 왕실불교와 호국사상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6.12.14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황룡사와 분황사를 비롯한 신라 중고기 사찰건립의

정치적 배경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호국 불교 사상
Ⅲ. 사찰 창건의 배경
Ⅳ. 사찰 창건의 의미
Ⅴ. 맺음말

본문내용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을 꼽으라면 호국 불교를 누구나 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불교 발전은 호국이라는 이름 아래 발전을 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 이전의 신라 때부터 삼국 통일의 바탕이 되는 백성들의 구심점 역할과 화랑들의 정신적인 모태인 세속 5계를 제시한 것이 불교이며 고려 ․ 조선 시대 때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칼과 창을 들고 싸운 것이 불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불교는 나라와 관련된 정치적인 색채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기원을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불교가 호국적 색채를 띠게 된 것은 불교가 처음 전래되었던 시기인 삼국시대부터 이다. 고구려에서는 후에 도교의 융성으로 그 특징을 잘 살펴 볼 수는 없지만 백제와 신라는 호국 사찰이라는 물리적인 증거를 통해 그 특징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이 호국 사찰을 대표하는 것이 백제에서는 미륵사라 할 수 있으며 신라에서는 분황사, 황룡사, 사천왕사 등을 말 할 수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 신라 중고기 때 창건된 사찰인 분황사와 황룡사만을 다루기로 한다. 황룡사는 진흥왕 때 세워진 절이고 분황사는 선덕여왕 때 세워진 절이다. 둘 다 그 창건의 주체가 왕실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리고 그 창건의 목적이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는 것이라는 점 또한 같다. 또 분황사는 모전석탑을 황룡사는 구층목탑을 중시한다는 양식적 측면에서 또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비교할 것이 많은 두 사찰을 통해 당시 시대의 불교의 호국적인 성격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우선 당시 사회의 불교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고 두 사찰의 창건 배경을 종교적 의미가 아닌 정치적인 배경으로 살펴 본 후에 이 두 지니고 있는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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