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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우리의 도자기 - 조선백자에 대하여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14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열심히 여기 저기 제가 직접 뛰어 다니면 만든 자료 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지만 이대로 설마 배껴 쓰실건 아니지요?

목차

1. 머리말
2. 백자를 제작하던 가마(窯)
1)

본문내용

1. 머리말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도자기는 주지하다시피 분청사기와 백자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 14세기경부터 그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16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간 제작되어, 서민들의 소탈한 정서나 관청용의 정형화된 형식을 담아냈던 도자기다. 이러한 분청사기에 비해 백자는 실용성을 강조하거나 단정한 양식, 혹은 풍만한 양감을 지닌 조형 등으로 특징지워진다.
순백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한 백자는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졌으나 여말 선초 중국 강서성(江西省) 경덕진(景德鎭)에서 만든 단단한 백자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 전기간을 통해서 제작되고 애용되던 자기이다. 조선 백자에는 순백(純白)에 대한 조선인의 미감(美感)을 철저히 반영되어 있다. 최상품 백자는 하얀 태토에 파르스름한 투명유가 입혀지고, 세종연간(1418-1450)부터는 왕실에서 어기(御器)로 전용했을 뿐 아니라 중국 황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매우 정교한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연간(1455-1468)에 이르면 서민이라도 부유한 계층은 화려한 백자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반 서민들도 백자를 널리 사용하였다.
백자는 1467년 4월 이후 분원 관요(分院 官窯)시대에 들어서면서 대량생산되었으며, 이와 반대로 분청사기는 쇠퇴하였다. 그러나 1592년에 발발한 임난(壬亂)으로 한국도자사에는 100년 이상의 백자 침체기가 있게 된다. 백자의 제작이 활발히 재개된 때는 숙종연간에 들어서면서이고 이러한 양상은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왕실자기와 중앙관청용 자기에 대해서는, 1997년도에 국립중앙박물관과 경기도박물관이 공동조사한 경기도 광주일대 도요지의 보고서가 1998년에서 2000년에 걸쳐 완간되어 많은 새 정보를 얻게 되었다.
조선시대 백자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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