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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13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프랑스 화가이자 디자이너 인 뒤피의 일생과 연보, 작품설명

목차

없음

본문내용

뒤피 [Dufy, Raoul, 1877.6.3~1953.3.23]

프랑스 화가. 디자이너. 1877년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의 르 아브르에서 태어났다. 러시아와 터키의 전쟁이 일어나던 해 1877년 라울뒤피는 프랑스의 작은 금속회사의 경리직원으로, 휴일에는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던 아버지 리용 마리우스 뒤피와 어머니 마리우제니이다 모르니 사이에서 4남 5녀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집안이 무척 궁핍했던 까닭에 중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가난하지만 음악을 즐기는 우아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뒤피가 화가를 지원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다. 그의 동생들도 두 사람은 음악가로 한사람은 화가가 되었다. 무렵에 커피 수입상사에 취직하지만 이듬해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시립미술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병역을 마친 1900년 시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파리의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 에 입학하여 L.보나르 문하에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하였다. 여기에서 앵그르를 숭앙하는 뤼이리예 밑에서 아카데믹한 수채화를 배우면서 오통 프리에스와도 교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인상파풍의 그림을 그리다가 1905년 H.마티스의 강한 자극을 받아 포비즘운동에 가담, 강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대담하게 단순화된 표현을 전개하였다
1908년경부터는 사진과 큐비즘의 경향에 이끌려 감화를 받고, 1913년경부터 큐비즘에 근거를 두면서도 점차 독자적인 작풍을 이룩하였다. 11년경부터 장식미술에도 진출, 폴푸아레 의상실에서 직물염색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그 뒤 복지 디자인에 종사하면서 장식적 양식을 발전시켰으며, 20년부터 회화에 몰두해 니스 등의 행락지, 경마장, 요트레이스, 음악회 같은 친밀감 있는 주제를 취하여, 경묘한 붓놀림으로 밝고 풍부한 색채를 아라베스크풍으로 배열하여 감각적이고 산뜻한 양식을 보였다. 1922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을 여행한 후, 자유분방한 선과 명쾌한 색채성을 합성한 장식적 양식을 확립하여, 유화 외에 수채화에도 뛰어나 부동의 명성을 획득하였다. 28세가 된 1905년 살롱 도톤느에서 마티스의 ‘호사, 정숙, 쾌락’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기까지는 주로 인상파류의 풍경화를 제작한다.
창조적인 이메지네이션의 기적이 색채와 선묘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았을 때 인상파의 사실주의는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마티스 그림과 마주치며 인상파에서 야수파로 전향하게 된 데도 예의 그 ‘빛’에 대한 뒤피의 본능적인 끌림이 작용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마티스는 당시 니스에 머물며 남프랑스 특유의 빛을 사냥하고 있었고, 마티스 특유의 색감에서 드러난 그 빛이 뒤피의 예술 혼을 감동의 물결로 휘감은 것이었다. 11년경부터 장식미술에도 진출, 폴푸아레 의상실에서 직물염색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이 일은 그의 특색인 밝은 색채와 경쾌한 구도에의 기호를 한층 살렸다고 할 수 있다.
1920년을 분기점으로 현저히 달라진다. 그 해에 뒤피는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방스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 방스에서“여기서 빛에 대해 개안하지 못했다면 나는 인상파나 야수파의 아류화가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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