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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혁명 - 농경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13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신석기 혁명 농경에 대해 한국 고고학과 세계 고대문명 측면에서의 보고서

목차

1. 농경문화

2. 농경의 기원

⑴ 고든 차일드의 건조설
⑵ 브레이드우드의 핵지구설
⑶ 빈포드의 인구압-주변지구 가설
⑷ 최근의 연구

3. 농경민족

4. 농경방식

5. 고대문명과 농경

6. 신석기시대와 농경

7. 신석기 혁명

8. 농경의 시작이 의의

본문내용

1. 농경문화

주로 산업문명 이전의 기초사회에 있어서 곡물 ·감자류 재배의 농경을 경제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문화.
채집 수렵시대로부터 인류는 점차 목축 · 농경문화를 영위하였으며, 이 두 문화는 역사적 ·지역적으로 서로 뒤섞여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열대우림지대에서는 BC 6000년에 구근류가 재배되었고, 한서의 차가 큰 건조성 초원에서는 BC 4500∼BC 4000년에 이미 보리류의 곡물이 재배되어 인도 ·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황허강 유역 및 북아프리카 · 유럽 등지로 확대되었다. 북방의 한랭지역에서는 귀리 ·호밀이 재배되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옥수수가 재배되었으며, 동남아시아의 온대 평지에서는 감자류가 재배되다가 쟁기를 이용하여 점차 벼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생산기술이 다양하였기 때문에, 그와 함께 농경문화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농경생활은 토지에 고착하여 생장 ·결실이라는 계절적 변화를 보이는 식물의 재배에 의존하여야 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정착생활이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번기 · 농한기라는 생활의 리듬이 생겼다. 정착생활은 재물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고, 생활의 리듬에 의하여 생기는 한가한 시간은 식료품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 이외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농경은 인간이 스스로 직접 식량을 만들어내는 생산경제이므로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식량의 절대량에 대한 제한이 없어진다.
즉, 잉여 식량을 생산해내는 생활이며, 그 결과 한편으로는 생산량과 노동량 및 부양량과의 연쇄적 관계에서 인구증가를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착생활에 의해서 식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되어 생활의 안정을 확립할 수 있게 됨으로써 문화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농경생활의 기본적 특징은 기술과 물질문화, 사회조직, 주술과 종교 등 각 분야에 있어서 현저한 발전을 촉진하였다. 토기 · 직기 · 토목건축 등에 있어서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견 및 발명은 후대의 고대 문명사회에 있어서의 정밀한 도시적 기술문화와 수공업의 형성을 인도하여 주었다.
인구증가와 정착생활에 의한 인간 · 사회관계의 복잡화는 촌락조직과 상호협조적 공동 노동조직 또는 토지상속을 매개로 한 부계 · 모계의 계보관념과 그것에 기초를 둔 친족조직 등을 발전시켰다. 또 식물의 생장 ·결실이라는 자연의 변화과정을 인간의 힘과 책임에 의해서 재현하는 생활은, 식물 그 자체나 식물의 계절적 순환 또는 식물을 만들어내는 대지 등을 둘러싸고 곡령관(穀靈觀), 죽음과 재생관, 지모신관(地母神觀) 기타 여러 가지의 주술적 · 종교적 관념과 관습 · 행사 등을 발생시켰다. 이와 같은 각 방면에 걸친 농경문화의 발전은 그 후의 인류문화를 전개하는 데에 기초를 주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농경 출현 이후의 기간이 전체 인류 역사 중에서 차지한 비율은 100분의 1에 불과하지만, 그 동안에 일어난 인류문화의 비약적 발전을 생각한다면, 그와 같은 발전의 기초가 된 농경문화의 의의는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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