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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성대원군 개혁정치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12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흥선대원군에 대해 조사한 것입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목차

1. 머리말
2. 대원군의 개혁
① 인재등용
② 경북궁 중건
③ 서원정리
④ 국가기구와 재정제도의 정비
3. 쇄국정책
4. 맺음말
* 참고자료 *

본문내용

1. 머리말
철종의 뒤를 이어 고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국왕의 생부인 흥선군 이하응은 대원군이 되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 때의 사회는 세도정치로 정치, 사회가 혼란하고, 삼정의 문란으로 국가 재정과 농민의 생활이 궁핍하며, 신분체제가 붕괴되는 등 조선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구조가 허물어져 이를 바로 세울 사람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기에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대내적, 대외적으로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즉, 대내적으로는 국가 기강을 확립하여 왕권 강화책을 추구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외세의 침투를 물리치기 위해 쇄국 정책을 강화하였다. 여기서 대원군의 개혁과 그의 대외 정책인 쇄국정책에 대해서 알아보자.

2. 대원군의 개혁
첫째, 인재등용이다. 대원군이 접권 후 가장 먼저 서두른 것이 ‘인사 개혁’이었다.
안동 김씨 일족을 몰아내고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하였다. 이러한 과감한 인사 정책은 붕당정치와 세도정치의 폐단을 제거하여 궁극적으로 왕권으로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
둘째, 경복궁의 중건이다. 흥선 대원군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타버린 후 국가재정이 부족하여 버려둔 채 있던 경복궁을 그 동안 세도정치로 떨어진 왕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중흥의 기세를 올리기 위해 경복궁 중건 계획을 발표하고 1865년 영건도감1)을 설치, 공사에 착수하였다.
처음에는 백성과 관리들에게 골고루 원납전2)이라는 기부금을 받고 부역에도 신중을 기해 민원을 크게 사지 않으면서 공사를 진행했으나, 차츰 폐단이 나타났으며, 다음해 3월에는 목재장에 큰 불이 나서 공사에 큰 지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은 목재․석재를 각 지방에서 모아 들이고 심지어는 양반의 묘지림을 마구 베어 건축 자재를 확보하는 외에도, 원납전을 받고 벼슬을 파는가 하면 통행세를 부과하고 당백전3)이라는 돈을 발행하는 무리한 일을 강행, 1872년 마침내 공사를 완결지었다. 건축 과정에서 왕족과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원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국가 경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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