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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해로, 유로의 황로학적 성격과 그 사상사적 의미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11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I. 한비자와 황로학
1. 한비자와 노자
2. 황로학의 역사적 흐름과 「해로」, 「유로」
II. 노자의 ‘도’에 대한 계승과 개조
1. ‘추상’에서 ‘구체’로
2. ‘리’ 개념의 도입
III. ‘무위’ 개념의 현실 사회 적용
1. 제도의 활용
2. ‘인’의 원리의 수용
IV. `치신‘의 양생 사상
1. 욕망의 다스림
2. 치국문제와 연계
V. 「해로」, 「유로」의 사상적 의미

본문내용

1. 한비자와 노자
한비자는 ‘법치’를 주장하였고 노자는 ‘무위정치’를 주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한비자와 노자에 대해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사마천은 「노자한비열전」에서 노자, 장자 그리고 신불해와 한비자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이것은 사마천이 이들 네 사람의 사상에서 어떤 공통점을 보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들 네 사람을 하나로 꿰뚫고 있는 ‘도덕’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우선, 사마천은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적 본원을 모두 ‘황로’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대인들이 생각하는 ‘도가’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도가’와 내용이 다른데 노자 사상을 바탕으로 법가 유가 등 여러 사상들의 장점들을 종합하는 이른바 ‘황로학’을 가리킨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사마천은 노자와 장자 신불해와 한비자를 모두 ‘황로학’이라는 하나의 공통 범주로 묶고 있는 셈이다.
2. 황로학의 역사적 흐름과 「해로」, 「유로」
황로한은 정확한 발생시기와 그것이 진행된 기간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 사상적 특징과 성격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였고 논란도 많다. 그것은 아마도 선진 제가의 여러 학파와는 달리 황로학은 그것이 형성된 시기나 그 창시자가 분명하지 않기에 그것을 대표하는 사상가나 문헌을 단정적으로 규정하기가 힘들고, ‘황로학’의 범주를 저마다 조금씩 달리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될 것이다.
‘전기 황로학’은 노자의 무위 사상 위에 법가 사상을 접목시킨 정치철학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황로학의 흐름은 진제국과 서한 전게 6-70년간의 전성기를 거쳐, 멀리 동한 시대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우선 진대에서 서한 초기의 중기 황로학은 여전히 치국의 문제를 중하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 접근 방식이 전기 황로학과는 달리 법가 사상 외에 유가적 요소도 많이 수용하고 활용한다. 서한 중기 한무제가 동중서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른바 ‘독존유술’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이전 시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황로학은 중앙무대에서 쓸쓸히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곧 황로학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치 무대에서 실패한 황로학은 이후 그것에 내재된 또 다른 요소인 ‘치신’ 문제를 전면으로 등장시켜 새롭게 발전해 간다. 이 시기의 황로학은 이른바 ‘후기 황로학’으로 규정될 수 있는데, 후기 황로학은 치국의 문제를 완전히 도외시하지는 않지만, 주로 치신 혹은 양생의 문제에 천착하면서 「노자상이주」를 거쳐 도교 성립의 밑거름이 된다. 이상과 같은 황로학의 역사적 변천과 사상적 흐름에서 「해로」, 「유로」는 그것이 성립된 시기나 그것에 내재된 사상적 특성상 일단 전기 황록학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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