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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조선시대 중인의 신분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10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한국신분사연구의 조선시대 중인의 신분을 요약한 글임
정리가 잘되었음

목차

1) 머리말
2) ‘中人’의 범위
3) ‘中人’ 명칭의 유래
4) ‘中人’의 형성시기
5) 技術職 中人의 차별과 通淸運動
6) 조선전기 技術官僚의 신분
7) 조선후기 技術職 中人의 가문

본문내용

조선시대는 良․賤制를 골간으로 하는 신분제사회였으나, 16세기경부터 계급분화가 촉진되면서 17세기 이후로는 兩班․中人․上漢의 새로운 계급관계를 형성했다. 법제상으로 본다면 17세기 이후의 조선사회도 여전히 良賤制를 기간으로 하고 있었지만, 이미 양인과 노비의 장벽은 근저에서부터 무너져 가고 있었다. 下層良人과 奴婢는 ‘上漢’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었고, 良人의 권리이자 의무이던 軍役에 奴婢도 참여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良賤制의 붕괴는 조선왕조 身分制의 근본적 동요를 의미라는 것이지만, 계급관계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班常制’는 ‘良賤制’를 대신해서 나타난 새로운 계급구조이며, 中人은 지배계급인 兩班과 피지배계급인 上漢의 중간에 위치하는 소수의 中間階級이었다. 하지만 良賤制처럼 班常制는 법제화 된 제도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良賤制에서 班常制로의 전환은 신분제사회에서 계급사회로 나아가는 사회적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中人은 班常制에서 파생된 중간계급인데 이들이 갖춘 교양과 전문적 지식은 上漢에 비해 높았다. 그래서 이들은 政治的․文化的 영향력이 매우 컸다. 따라서 조선후기 政治史와 文化史에서 中人의 역할은 반드시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더욱이 中人은 개항 이후 倭洋세력과 접촉하면서 소위 開化政策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전문적 지식이 높은 효율성을 드러내어 開化派의 先頭走者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제 中人은 중간계급으로서의 자시 位相에서 탈피하여 近代化의 한 주역으로서 당당하게 역사의 地表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참고 자료

조선신분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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