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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거란,여진과의 관계

저작시기 2006.10 |등록일 2006.12.10 한글파일한글 (hwp) | 16페이지 | 가격 1,300원

소개글

고려시대 대외관계 중에서 거란, 여진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쓴 레포트

목차

1. 머리말
2. 고려왕조기 동아시아 정세
1) 태조의 북진정책
2) 거란의 흥기
3) 고려․거란과 중국과의 관계
3. 고려와 거란의 외교의 전개 및 정책의변화
1) 태조의 대거란 정책
2) 만부교 사건
3) 거란의 침입과 서희의 담판
4) 3차 침입 그후의 교섭
4. 여진과의 관계
1) 초기 여진과의 관계
2) 윤관의 여진정벌과 9성
3) 금국 성립이후의 관계
5. 맺음말

본문내용

11세기 동북아시아의 세력중심이 변동할 즈음 거란․고려․여진의 관계가 전동아시아 국제관계의 질서에 변화를 가져왔다. 926년 거란이 발해를 정벌하고 東丹國으로 改立하였다. 이때 고려와는 地界가 相接하고 있어서 점점 이해관계가 나타났고 고려 태조는 계속 거란을 仇賊視하면서 일찍부터 발해유민 및 여진을 수용하였으며 일찍이 여진․흑수․達姑 등의 勁騎를 이용하였고 삼한을 통일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북진정책을 推動하여 高句麗舊疆恢復을 시도하였다. 만년에는 후진과 연합하여 거란을 공격코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정종은 태조의 북진정책을 承襲하여 거란을 방어코자 광군 30만을 양성하며 점차 北疆을 개척해 나갔다. 광종때 서쪽으로 후주와 송을 섬기면서 계속 거란을 방비하였다. 거란 태종은 東丹王 倍의 세력성장을 기피하여 東丹都를 遼陽으로 옮기었다. 東丹王이 후당으로 逃奔하자 태종은 후당의 政局에도 干預하고 뒷날 石晋政局에도 간예하면서 동북일대의 경영에는 틈이 나질 않았다. 동북 諸部는 이틈에 자만하여 져서 점차 거란의 위협이 되었다.
성종년간에는 성종이 적극적으로 정벌전을 주동하였다. 986년 송 태종이 거란을 정벌코자 고려․정안․兀惹와 掎角之勢를 이루어 거란과 전쟁을 하였으나 岐溝關에서 거란에 패배하였다. 거란이 비록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고립감을 면치 못했다. 성종은 즉위년 즉각 東征政策을 取하였다. 이는 먼저 송이 우익세력을 짤라내고 그 후에 송정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統和元年부터 10년까지 계속 압록강여진 및 정안국정벌에 종사하고 압록강하구에 城堡를 쌓아 동북제부와 송의 貢馬通路를 차단하면서 고려정벌을 개시하였다. 統和 10년부터 開泰 9년까지 크고 작은 고려공략이 무릇 10여차나 되었는데 그 중에도 비교적 규모가 큰 것만도 3차나 되었다. 통화 10년, 蕭恒德이 고려 북변에 進功하여 고려를 압박하였다. 그러나 고려와 담판한 결과 거란은 강동 6주를 고려에 讓與하고 조공약속을 받았다. 고려가 이 땅에 성보를 쌓고 북방진출의 기지를 삼아 거란과 동여진 지역의 통로를 차단하였다. 거란이 고려와 호화하고 兀惹를 공격했으나 아무 성과 없이 물러났다. 1004년 윤9월, 거란이 대거 송을 침공하여 곧바로 澶州에 이르렀으나 결국 화약을 맺고 평등지위와 歲幣를 얻었다. 이에 거란은 득의 만만하였다. 그러나 동북공제가 미흡한 것이 심리가 편치 않았고 뒷날 동북공제의 중심지역을 깨달았는데 이곳이 바로 이미 고려에 양여한 강동지역이였다. 이때 고려에 강북이 정변이 있었는데 성종은 이를 적구로 삼아 1010년 스스로 장수가 되어 고려에 침입하였으나 이득 없이 물러났다. 1018년 蕭排押이 대군을 거느리고 고려에 침구 하였으나 茶陀二河와 귀주에서 패하고 그 후부터는 감히 침입치 못하였다. 고려의 대첩이 東北女眞諸部에 전해지자 여진의 다수부족이 모두 고려에 귀부하고 군사정보와 군수품도 제공하였다. 전후 그리 오래지 않아 국교는 회복되었으나 고려는 거란을 믿지 못하여 北邊에 천리장성을 쌓고 羅成을 수축하며 거란을 엄히 방어하려 하였다. 또 일면으로는 송과 연합하고 여진과 결합하면서 점차 여진지역에 覊縻州를 확장하여 갔다.
결론적으로 한반도의 고려왕조, 중국대륙의 한족, 만주 지역의 거란, 여진 등 호족, 이 세 민족 사이의 각축이 고려시대 대외관계의 특질이라 할 수 있다. 거란족을 비롯한 호족은 전통적으로 생필 물자를 획득하기 위해 철저하게 주변 국가를 약탈, 정복하는 대외전수를 구사했다. 그런데 10세기 초 당나라가 무너지고 대륙의 힘의 공백 현상이 나타나자, 이들은 단순한 생존 차원에서 벗어나 중원을 차지해 대국가를 건설하려는 적극적인 전술을 펴기 시작한다. 고려시대 중국대륙에서 거란, 금, 원 등 강력한 이민족 국가가 등장한 것도 이 사실을 입증한다. 한족과 호족은 항시 서로를 견제하였기 때문에 한족이나 호족의 입장에서는 고려는 그들의 한족의 외교 전략에 필요한 존재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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