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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지방의 백제 고분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09 한글파일한글 (hwp) | 28페이지 | 가격 5,500원

소개글

호남 지방의 백제 고분

목차

序 論

本 論

Ⅰ. 錦江流域의 範圍

Ⅱ. 周溝墓
1. 周溝墓의 立地
2. 周溝墓의 構造
1) 墳丘
2) 平面形態
3) 埋葬施設
3. 周溝墓와 周溝土壙墓의 比較

Ⅲ. 竪穴式石槨墳
1. 竪穴式石槨墳의 立地
2. 竪穴式石槨墳의 構造分析
3. 竪穴式石槨墳의 埋葬樣式

Ⅳ. 橫口式石槨墳
1. 橫口式石槨墳의 類型分類
2. 橫口式石槨墳의 變化過程
1) 第Ⅰ類型의 特徵
2) 第Ⅱ類型의 特徵

Ⅴ. 橫穴式石室墳
1. 橫穴式石室墳의 立地
2. 橫穴式石室墳의 構造
1) 墳丘
2) 平面狀態
3) 石室位置
4) 天障形態
5) 바닥시설
6) 연도
3. 橫穴式石室墳의 類型分類
4. 橫穴式石室墳의 展開過程
1) Ⅰ期 (導入期)
2) Ⅱ期 (定着期)
3) Ⅲ期 (擴散期)
4) Ⅳ期 (衰退期)

結 論

添 附 (圖表 1, 2)

參考文獻

본문내용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 있어 生老病死는 피할 수 없는 桎梏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政治體로서 국가와 사회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죽음이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왔다. 처음에는 죽음에 무관심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점 人智가 발달해 가는 과정 속에서 영혼에 대한 믿음, 죽음에의 공포가 생기면서부터 죽은 사람을 일정한 장소에 정중하게 모시는 畏敬의 관념이 생겼을 것이다.
이집트의 미라와 같이 시체가 썩지 않는 효과를 낸 조개무지 속의 무덤은 시체가 남아 있음으로써 영혼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엿보게 한다. 반면 인류학적인 관점에서는 죽음에 대한 혐오감, 터부 의식 -송장이 갖고 있는 불안, 부패-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없애주는 것이 영혼에 대한 구제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한 의식은 나무 위에다 시체를 얹어놓고 바람에 날려서 탈구시키는 만주지방의 風葬, 새가 와서 찍어 먹게 하는 티벳지방의 鳥葬, 그리고 우리 나라 안면도 근처에서 아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시체를 짚으로 싸서 假埋葬하는 草葬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것들은 대체로 인간의 시체를 개방된 위치에 놓는 방식인데 이와는 별도로 시체를 밀폐된 장소에 놓는 매장 양식 또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땅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는 土壙墓, 석관을 몇 개 짜서 만든 石棺墓, 시체를 놓고 돌을 쌓아서 덮는 積石墓, 그리고 支石墓, 甕棺墓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매장 문화는 고대 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古墳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古墳이란 대체로 “한정된 시대에 몇 가지 요소를 구비한 지배층의 분묘”를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정된 시대’란 국가라는 형태를 이루기 전인 부족사회에서 국가적 통제가 확립되어 가는 삼국의 건국 시기로부터 삼국 통일 뒤 火葬의 성행에 따라 고분의 축조가 쇠퇴된 시기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몇 가지 요소’로서 입지 조건, 분구의 외형과 규모, 내부 구조, 다량의 부장품 외에 이와 관련된 시설 등을 들 수 있고 나아가서 이러한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진 구조 형식의 지배층 분묘여야 한다.
이러한 고분은 지배층인 피장자의 정치적․사회적 위치를 잘 나타내며 당시의 매장 관념과 함께 피장자가 속하고 있던 시대상․사회상 등도 반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분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화 발전하고 지역에 따라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고분 축조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고분 문화 시대의 推移와 지역 사회의 면모를 알 수 있다.
本考의 주제가 되는 百濟는 漢江流域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錦江流域의 公州와 扶餘로 두 번에 걸쳐 천도했기 때문에 고분을 비롯한 많은 유적들이 王都地域인 서울 江南地域과 公州․扶餘를 중심으로 집중적인 분포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분 조사도 주로 王都 부근에 밀집되어 있는 지배층의 묘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조사지역 범위가 확대되고 연구자가 증가함에 따라 王都 중심의 지배층 묘제 외에도 在地墓制로 판단되는 여러 유형의 조사 예가 증가하면서 백제고분 연구도 다양한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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湖巖美術館 發掘團, 『96 華城 馬葭里古墳群 發掘調査 中間報告』, 1996

2. 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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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基雄, 『古墳』 빛깔있는 책들 37, 대원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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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論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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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正鏞, 「3~5世紀 錦江流域 馬韓․百濟墓制의 樣相」, 『韓國考古學會 第 22回 韓國考 古學 全國大會 發表要旨』, 1998
李南奭, 「百濟竪穴式石室墳 -變遷과 橫口式의 發生-」, 『韓國考古學會 第 5回 發表要 旨』, 1993
李南奭, 「百濟橫穴式石室墳 硏究」, 『百濟論業』 第 4輯, 百濟文化開發硏究院, 1994
李南奭, 『百濟 石室墳墓制의 硏究』, 高麗大學校 大學院 博士學位論文,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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