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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가 박차정선생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0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지난 2006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는 박차정(朴次貞)선생이 선정된 바 있었다. 사실 나는 부끄럽지만 이분의 활동이라든지 일대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과제를 하게 되면서 차츰 알게 되었다. 박차정 선생은 의열단 단장인 약산(若山) 김원봉 1898년 밀양출생으로 박차정 선생의 남편, 의열단 단장, 조선민족혁명당 조직,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역임, 광복이후 1948년 월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등을 지내다 1958년 숙청됨.
선생의 부인이기도 하고 부산 동래지역의 대표적인 항일투쟁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차정 선생이 실제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선생의 삶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목차

서론
본론
1) 출생과 성장
2) 국내에서의 활동(근우회)
3) 국외에서의 활동(의열단―민혁당-조선의용대)
결론

본문내용

≪序論≫
「우리 조선의 여성은 오랫동안 전통적 속박으로 인권이 유린되어 왔고 다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생존권을 박탈당함으로써 전통적 속박에 의한 가정의 노예일 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약탈시장의 상품으로 임금노동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 아래 선각적 여성들에 의한 활동이 있었지만 일본경찰의 탄압과 지도부의 불통일에 의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였다. 또한 부녀 대중과 유리된 몇몇의 간부들의 운동이어서 전 민족 혁명운동과 연결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 운동이 대단한 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
우리 조선부녀를 현재 봉건적 노예제도 하에 속박하고 있는 것도 일본제국주의이고, 또 우리를 민족적으로 박해하고 있는 것도 일본제국주의이다. 우리들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는 다면 우리 부녀는 봉건제도의 속박 식민지적 박해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또 일본제국주의가 타도된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혁명이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방면에서 진정한 자유 평등의 혁명이 아니라면 우리 부녀는 철저한 해방을 얻지 못한다.」

- 민혁당 남경조선부녀회 창립선언중 -

지난 2006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는 박차정(朴次貞)선생이 선정된 바 있었다. 사실 나는 부끄럽지만 이분의 활동이라든지 일대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과제를 하게 되면서 차츰 알게 되었다. 박차정 선생은 의열단 단장인 약산(若山) 김원봉 1898년 밀양출생으로 박차정 선생의 남편, 의열단 단장, 조선민족혁명당 조직,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역임, 광복이후 1948년 월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등을 지내다 1958년 숙청됨.
선생의 부인이기도 하고 부산 동래지역의 대표적인 항일투쟁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차정 선생이 실제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선생의 삶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本論≫
1) 출생과 성장
박차정은 1910년 5월 7일 부산 동래 복천동 417번지에서 아버지 박용한(朴容翰)과 어머니 김맹련(金孟蓮)의 3남(문희, 문호, 문하) 2녀(수정, 차정) 중 넷째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일찌기 새로운 문물에 눈을 떠 한말 동래 지방의 신식학교인 개양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탁지부 주사를 역임한 측량기사였다.

참고 자료

1.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 12-13, 독립유공자 공훈록 편집위원회, 국가보훈처, 1996
2. 시민을 위한 부산의 역사, 부경역사연구소, 도서출판 선인, 2003
3. 항일운동가 박차정의 생애와 투쟁, 강영심, 여성문화이론 연구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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