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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租)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0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조선 제22대 왕으로 휘는 산. 자는 형운, 호는 홍재(弘齋). 또는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다. 영조(英祖)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와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의 차남이다. 1759년(영조35) 8세때 왕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영조38) 11세때 생부 사도세자가 비명으로 세상을 떠나자 일찍 요절한 백부 효장세자(孝章世子)의 후사가 되어 제왕수업을 받는다. 1775년(영조51) 12월 82세의 노쇠한 영조를 대신하여ㅛ 대리청정을 맡아 국정을 수행하다 이듬해 영조가 승하하자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목차

정조(正租) [재위 1776.3~1800.6.24년3개월]
◈정조의 치세
-규장각 설립
- 탕평책의 계승
-정용영(壯勇營)의 설치
-민본 우위 정책
◈화성건설
-화성행궁의 정치적 의미
◈현륭원(顯隆園)의 조성
◈정조시대의 사건
-신해통곡(신해통곡)
-신해박해(辛亥迫害)
-영남만인소 사건

본문내용

조선 제22대 왕으로 휘는 산. 자는 형운, 호는 홍재(弘齋). 또는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다. 영조(英祖)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와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의 차남이다. 1759년(영조35) 8세때 왕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영조38) 11세때 생부 사도세자가 비명으로 세상을 떠나자 일찍 요절한 백부 효장세자(孝章世子)의 후사가 되어 제왕수업을 받는다. 1775년(영조51) 12월 82세의 노쇠한 영조를 대신하여ㅛ 대리청정을 맡아 국정을 수행하다 이듬해 영조가 승하하자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1762년 2월 좌참찬 김시묵(金時黙)의 딸 효의왕후를 비로 맞아들인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듯이 정조 역시 세손시절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항상 죽음의 위협 속에서 홍국영(洪國榮)의 도움을 받으며 철저히 내명을 숨기며 살다 왕위에 오르자 왕권을 위협하는 환척(宦戚)과 노론벽파(老論碧波) 일당을 숙청하면서 영조의 탕평책(蕩平策)을 계승*발전시켜나간다. 또한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여 여러 갈래의 학문을 수용하여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한편 문예부흥을 통해 새로운 정치를 구현해나간다.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통합하고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우리나라의 르네상스기를 주도하며 현군(賢君)이자 18세기 ‘왕조 중흥의 영주’로써 찬란한 업적을 남긴다.

◈정조의 치세
-규장각 설립
즉위 후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규장각 설립이었다. 즉위 년인 1776년 설립되어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親筆)의 서화(書畵)*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보감(寶鑑) 등을 보관 관리하던 곳이다. 보기 드문 호학(好學)의 군주로, 퇴색해버린 홍문관(홍문관)을 대신하여 규장각을 설치하여 문화정치를 표방하였다. ‘우문지치(愚問知治)’와 ‘작성지화(作成之化)’를 규장각의 2대 명분으로 내세워 기성의 인재를 모으고 참신한 인재를 양성했다.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을 단순히 역대 국왕의 어제*어필을 보관하는 일뿐만 아니라 외척과 환관들의 역모와 횡포를 누르고 새로운 혁신 정치를 펼치기 위한 곳으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해 나가며 강력한 친위문신세력을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참고 자료

박영규 (1996).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한영우 (1998). 정조의 화성행차 그8일. 효성출판
박현모 (2001). 정치가 정조. 푸른역사
유봉학 (2001). 정조대왕의 꿈. 신구문화사
최홍규 (2001). 정조의 화성건설. 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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