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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호국불교의 상징- 황룡사 9층목탑

저작시기 2004.06 |등록일 2006.12.08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대학에서 <한국 고대인의 삶과 문화>이라는 과목을 수강하였을 때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참고적으로 역사학과 주관 수업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일정 주제를 잡아서 세미논문 형식으로 쓰라고 제시하였던 레포트였으며, 신라시대의 황룡사 9층목탑에 대하여 자세하게 정리한 세미논문입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 서론(들어가기)
: 왜 하필, 황룡사 9층목탑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인가?

- 황룡사, 황룡사지는 어떠한 곳인가...

- 황룡사 9층목탑은 어떠한 탑인가?

- 황룡사 9층목탑에 전해오는 이야기 : ‘삼국유사’ 발췌

- 목탑은 왜 9층이었을까?

- 언론에서 말하는 황룡사 9층목탑

- 황룡사 9층 목탑의 소실

- 결론(나오기)
: 내가 보는, 그리고 생각하는 황룡사 9층목탑, 그리고 신라

본문내용

- 목탑은 왜 9층이었을까?

<<9층목탑- 삼국통일의 꿈>>
진흥왕 때 삼국간의 우위를 차지했던 신라가 제27대 선덕여왕 때 들어서, 백제 군사가 신라 서울 근교까지 쳐들어오는 등 백제와의 전쟁에서 열세에 빠지게 된다. 이 때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자장법사의 청에 의해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는 9층 목탑을 세운다.
신라 주위의 아홉 나라를 모두 항복시키겠다는 강력한 호국의지가 담긴 탑이었다. 목탑 조성의 총책임자는 제25대 진지왕의 아들인 이간 김용춘 이었으며, 기술 공사의 책임자는 백제 기술자 아비지였다.
9층목탑의 건립 의도를 알아차린 아비지는 공사를 중단하려고 했으나, 꿈속에서 신인이 내려와 탑을 완성하는 것을 보고,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탑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탑의 높이는 226척(尺)으로 80m에 이르는 큰 탑이었으나, 고려시대 몽고의 4차 침입(1238)으로 당시 민족의 종교적 지주였던 황룡사가 불탈 때 구층목탑도 함께 불타버렸다. 이후 다시 복원을 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 옛날의 기상을 짐작하게 한다.

<<목탑은 왜 9층이었을까?>>
80m 높이를 지금의 일반적인 건물로 환산하면 약 25층의 높이가 되는데, 목탑의 9층 지붕 용마루까지 높이는 63m 정도가 된다.
경주지역의 문화재 보호구역인 대릉원 주변에는 건축규제가 심한 곳이다. 이곳에 허가가 나는 건축은 `높이 7m 단층 기와집`이라는 조건이 있다. 7m 단층 기와집에 9를 곱하면 황룡사의 9층 지붕까지의 높이인 63m가 나온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조 에는 `황룡사에 구층탑을 조성하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천하가 와서 조공하며 나라의 복이 길이 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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