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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의 비교를 통하여 본 세종 말년의 過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07 워드파일MS 워드 (doc) | 8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세종을 아버지 태종과 비교하여 세종의 정치적 실수들에 대해 쓴 글입니다
대부분이 세종을 치켜세우는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세종에 대한 비판은 없는 실정입니다
태종과의 비교를 통해 세종의 한계에 대해 쓴 보고서 입니다
많은 부분 조선왕조 실록을 인용했습니다.

목차

1. 들어가기
2. 세종-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왕권투쟁에 대한 소극적 대처
3. 세종-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을 정치에 참여 시킴
4. 세종의 인재등용방식과 이의 한계
5. 결론

본문내용

1. 들어가기
세종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며, 가장 존경 받는 왕이다. 세종은 세종‘대왕’이며, 세종‘성왕’이다. 대부분의 세종 관련 책의 결론은 “위대한 세종대왕 만만세”로 정리되며, 몇몇 책은 용비어천가를 읽는 것과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신격화된 세종을 정치적 수완가 세종으로, 인간 세종으로 끌어내려 보겠다는 것이 조별 발표의 목적이었고, 그 중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세종 말년의 실정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세종의 생애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에는 세종의 정치적 치밀함에 감탄하였지만, 세종 말년에 집중하게 되면서 오히려 세종과 대비되는 태종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세종의 몇 가지 실수들을 다루려고 하는데, 첫번째는 자신의 사후에 닥칠지 모르는 왕권투쟁에 대해 대처하지 않은 점을 태종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세종 자신의 두 아들을 정치에 참여 시킨 점을 역시 태종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려는 것이며, 세번째는 세종의 인재 등용 방식의 특징과 이의 한계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세종 말년의 실정을 간략히 소개한 후 마무리 하고자 한다.

2. 세종-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왕권투쟁에 대한 소극적 대처
세종이 죽은 후 즉위하게 되는 문종은 왕위에 오른지 불과 2년 3개월 만에 죽는다. 그리고 왕위는 불과 12살이었던 단종에게 넘어가게 된다. 단종에게는 대왕대비는 물론이고 대비도 없었으며, 왕비도 없었다. 따라서 수렴청정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왕권이 약화된 상황에서 세종의 아들들은 세력이 팽창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수양은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동생 안평대군을 사사시키고 세종이 된다. 또한 수양은 이후 왕위를 내놓고 도망간 단종 역시 사사시킨다. 세종이 계유정난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왕권투쟁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을 지라도, 몸이 약한 세자가 죽은 후에 자신의 혈기 왕성한 아들들이 왕권을 위협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는 자신의 사후에 닥칠지 모르는 권력투쟁에 대처하는 방식을 세종과 태종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이한우.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해냄. 2006.
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
김재영. 세종대왕의 정치지도력. 호남정치학회보, 9권, 단일호. 1997.
조남욱. 세종대왕의 정치철학. 부산대학교 출판부. 2001
이한우.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 동방미디어. 2003
최승희. 세종기의 왕권과 국정운영체제. 한국사연구회, 한국사연구. 1994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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