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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김익두 목사의 성령운동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06.12.07 | 최종수정일 2018.03.14 한글파일한글 (hwp) | 18페이지 | 가격 4,000원

소개글

한국교회사를 빛낸 김익두 목사의 일생과 목사님을 통한 부흥운동의 특징, 조용기 목사님과의 관계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차

Ⅰ. 서 론
1. 김익두 목사의 생애

Ⅱ. 본 론
1. 김익두 부흥운동의 배경
2. 김익두 신유부흥운동의 특성
3. 김익두 목사와 조용기 목사

Ⅲ. 맺 음 말

* 첨 부
1. 성령의 세례 (김익두 목사 설교문)
2. 그의 이적들
3. 김익두 목사에 대한 오해와 해명

**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김익두 목사의 생애
장로교 목사이자 유명한 부흥사였던 김익두(金益斗)는 1874 년(고종 11년) 11월3일 황해도 안악군 대원면 평촌리에서 아버 지 김응선과 어머니 전익선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어 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으며 16세에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했 다. 김익두는 한때 상업에 종사했으나 실패했으며,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서 유산을 탕진하는 등 어려움을 겪자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어, 20세 이후 청년시절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싸움과 술주정을 일삼는 `개망나니 김익두`로 불릴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27세 되던 1900년 봄에 김익두는 친구 박태환의 전도로 안악군에 있던 금산교회에 갔다. 여기서 그는 미국인 선교사 스왈렌(Swallen, W. L.)의 `영생`이라는 설교를 듣고 기독교에 입교하게 되었으며, 신약성서를 1년에 100번이나 독파하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변화 되었다. 그 후 1901년 7월에 부인, 어머니와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스왈렌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후 친구의 강권에 못 이겨 술을 마시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뛰쳐나온 김익두는 산에 들어가 대성통곡하며 회개기도를 하는 가운데 큰 불덩이가 몸에 떨어지는 듯 한 환상을 보았다. 이 때 `가슴을 칼로 찢는`것 같은 성령의 내적 임재를 경험한 그는 다시는 약해지지 않고 굳건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김익두는 1901년 10월 재령교회 전도를 위해 헌신하라는 스왈렌의 권유를 받고 교역사업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스왈렌으로부터 전도실력과 신앙을 인정받은 그는 1903년에는 신천지역의 개척 전도사로 파송되었다. 신천에서도 그는 새벽기도, 신약과 구약을 하루에 각각 2장씩 숙독, 냉수마찰, 가정에서 하루 3번 예배 등 스스로의 원칙을 굳게 지켰다. 그리고 항상 손에 성경을 들고 틈나는 대로 읽었으며, 길을 걸을 때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습관이 생길 정도로 열중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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