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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페르시아 전쟁사의 특징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헤로도토스
2. 페르시아 전쟁
3. 『페르시아 전쟁사』의 서술특징
4. 종합 - 헤로도토스 역사의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1. 헤로도토스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소스에서 출생하였으며, 가까운 친척인 서사시인 파니아시스가 참주(僭主) 리그다미스 2세에게 피살되자 그의 일족은 사모스섬으로 망명하였다. 나중에 귀국하였지만, 할리카르나소스에 가지 않고 BC 445년경에는 아테네로 가서 살았다. 당시의 아테네는 전성기였는데, 거기서 페리클레스·소포클레스 등과 친교를 맺었다. 그 뒤 아테네시가 BC 444년(또는 BC 443년)에 건설한 남이탈리아의 식민지 무리오이로 가서 그곳 시민이 되었으며, 거기에서 여생을 마쳤다. 대 여행을 하였다는 것은 저서 《역사》(9권)에서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여행 범위는 북으로 스키타이, 동으로는 유프라테스를 내려가서 바빌론까지, 남으로는 이집트의 엘레판티네, 서로는 이탈리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키레네까지였다.

2.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전쟁은 헤로도토스가 서양최초의 역사서인 『역사』를 저술하는 동기가 될 만큼 고대시대의 중요도 높은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구문명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에게해 동편 지역인 이오니아에 있었던 그리스계 도시들의 반란이다.(이오니아 반란) 이 지역은 페르시아가 참주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라스가 그리스인의 자유를 기치로 내걸어 이오니아의 다른 그리스 도시들이 합류하였으나 페르시아의 적수가 되진 못했고, 이에 그는 그리스본토에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군사강국이었던 스파르타를 먼저 방문하였다. 스파르타왕은 거리를 문제 삼아 간섭하기를 거절했고, 아리스타고라스는 귀환하는 중에 아테네를 방문하여 민회에서 설명을 했는데 아테네 시민들이 열렬히 호응하고 군선 20척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 원정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페르시아의 비위를 거스려 페르시아 전쟁이 발발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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