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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을 바라보는 시각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1.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통일이 사회, 문화적으로 미친 영향

목차

◆ 들어가며
◆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긍정적 고찰
◆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 고찰
◆ 마치며

본문내용

◆ 들어가며
우리나라의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보는 관점은 크게 긍정론과 부정론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긍정론은 그야말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인정하는 견해이고, 부정론은 발해의 존재에 유의하여 신라의 삼국통일이 내포한 근본적인 한계에 주목하는 견해이다. 신라의 소위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학자 가운데 변태섭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에 대해 동족의식을 가지고 하나의 영토아래에 하나의 민족국가를 형성하고자 통일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김영하는 신라의 ‘삼국통일’은 분단체제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남한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외세의존과 통일영역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이에 본 발제조는 소위 ‘삼국통일’에 대한 두 가지 시각 -긍정적, 부정적 측면- 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긍정적 고찰
◇ 통일 이전 삼국의 의식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의의를 알아보기 전에, 당시의 시대 상황부터 보자면, 3국 사이에 통일정책은 6세기 중엽부터 100여 년간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때 3국의 피비린내 나는 상쟁은 3국인들 사이에 극심한 적대감을 야기시켰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백제의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상표에서 고구려를 ‘시랑(늑대)’, ‘장사(긴 뱀)’ 등으로 표현하였다. 선덕왕 때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에 원조를 청하러 갔을 때, 백제에 대하여 ‘장사’, ‘복저(큰 돼지)’로 비유하는 등에서 3국인의 적대감정을 여실히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3국인의 대립의식이 이러한 국가의식의 차이에서 찾는 것 보다는 3국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치열한 현실적 상쟁에 보다 더 직접적인 요인을 구하는 것이 옳다. 3국인의 적대감은 족속의 차이에서 연유하기보다 생존경쟁과 자기보존의 방편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는 3국의 이질성보다도 그의 동질성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는 의미가 된다.

참고 자료

● 신형식,『삼국통일의 역사적 성격』, □한국사연구□61.62, 1988
● 변태섭,『삼국통일의 민족사적 의미』, □신라문화□2, 경주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985
● 김영하, 『신라의 삼국통일을 보는 시각』, □한국고대사론□(한길역사강좌12), 한길사, 1988
● 김영하, 『신라의 삼국통일은 타당한가』, □역사비평□20,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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