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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건국이념의 형성과 국내외 정세

저작시기 2003.01 |등록일 2006.11.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태조대의 국내외 정세

Ⅲ. 고려 건국 이념의 형성과 「훈요10조」
1. 건국 이념의 형성
2. 건국이념의 형성에 참여한 인물
3. 건국이념의 형성에서 발해의 위치

Ⅳ. 최승로의 상소문에서 본 발해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태조는 고려왕조를 수립하고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이는 신라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사회로의 전진을 의미하였으며,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백성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과제가 대두되었다. 당시의 국내정세를 보면 통일후에도 여전히 강성한 호족들이 지방에 산재해 있었으며, 태조는 이러한 호족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해 사성정책과 결혼정책, 그리고 기인제도를 실시하여 지방사회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고려왕조를 유지시키기 위한 소극적인 제도였을 뿐, 궁극적으로는 새로이 만들어진 고려사회를 이끌어갈 이념적 기반이 필요하였다.
이에 태조는 고려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훈요10조」를 통해 제시하였다. 또한 『정계』와 『계백요서』 8편을 남겼으나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훈요10」조 만으로는 태조가 구상한 고려에 대해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전부 알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이에 그의 행적과 함께 「훈요10조」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고려사회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 태조가 제시한 중요 목표는 불교중시와 북진정책임은 주지하는 바이다. 그의 행적과 「훈요10조」를 통해 북진정책을 위시한 대거란관계를 국내의 정세와 함께 살펴봄으로써 고려 태조가 지향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태조대의 국내외 정세
『고려사』태조 25년의 기사에는 평소 기록에 나타나는 태조의 인품과는 맞지 않게 거란 사신과 낙타에게 가혹한 행동을 한 모습이 보인다.

가. 거란이 사신을 보내와서 낙타 50필을 주었다. 왕은 거란이 일찍이 발해와 화목하게 지내오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을 내어 맹약을 배반하고 멸망시켰으니 이는 심히 무도한 일이다. 멀리 화친을 맺어 이웃을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드디어 교빙을 끊고 그 사신 30인을 섬에 유배시키고 낙타를 만부교 아래에 묶어두어 모두 굶어죽게 하였다.

거란이 낙타를 보내온 것은 후진이 거란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정책변화를 시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조는 온화하면서도 사리분별이 분명한 인물로 알려져 있음에도 거란에게는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뚜렷한 반감을 드러내었다.

참고 자료

1.『고려사』
2. 박용운,『고려시대사』, 일지사, 2000.
3. 이정신,「고려 태조의 건국이념의 형성과 국내외 정세」,『한국사연구』118, 한국사연구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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