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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가 사모한 ‘성몽룡’의 마을, 가평1리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1.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가평1리는 봉화군 물야면에 속해있으며 물야면 서쪽에 위치하고 있고 봉화읍에서 약 20분정도 걸리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마을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가평리 계서당’이라는 현판이다. 이 계서당은 계서공이라 불리어지며 창녕 성씨 계서공파 파시조인 ‘성이성’의 종택이다. 그리고 마을에 들어가 제일 처음 들은 얘기도 이 분에 대한 것이었다. ‘성이성’ 이 분이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실존 모델이라는 것이다. 낯선 이 마을에서 이런 흥미로운 얘기를 듣고 마을에 대한 느낌이 편하게 와 닿았다. 그렇게 우리조의 마을 답사는 시작되었다.

목차

1. 마을의 형성과 지금
1) 마을의 유래
2) 마을의 현재

2. 마을의 변화
1)창녕 성씨의 세력 변화에 따른 마을의 변화
2)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인한 마을의 변화
3) 현대사회의 물결 속에 나타나는 마을의 변화

3. 마을의 문화재
1) 가평리 계서당

본문내용

1. 마을의 형성과 지금

1) 마을의 유래

가평1리는 봉화군 물야면에 속해있으며 1반부터 5반까지로 나누어져 있다. 각기 반마다 불리어지는 자연마을명이 있는데, 1반은 객들(개뜰), 2반은 안마, 3반은 구렁마(구름마), 4반은 두룩실(두루실), 5반은 팔은(판은, 판은동, 판인, 팔인)이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안동 권씨로서 약400여년 전 지금의 3반에 들어와 터를 잡았다. 그리고 약 380여년 전에 창녕 성씨인 ‘성안의’가 아들 ‘성이성’을 데리고 지금의 2반에 터를 잡았다. 2반 ‘안마’에 터를 잡은 이유는 성안의의 처가가 지금의 영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순흥부라 불리어지며 지금의 봉화와 영주는 순흥부에 속해있었다. 그래서 장인이 지금의 안마에 땅이 있으니 여기에 와서 살라고 하여 자리를 잡았다. 성안의에게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성이성을 데리고 와서 터를 잡은 이유는 성이성이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총명하고 대인(大人)이 될 기질이 보였으며 효심도 깊어서라고 한다.
옛날부터 이 마을의 자연마을명은 佳丘(가구), 가두들(가구들) 등으로 불러 왔으며 성안의가 지금의 안마에 정착하면서 가죽 나무가 많은 언덕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가구라고 불려졌다. 그 후에 음을 따서 혹은 아름다운 언덕이라는 뜻에서 佳邱(가구), 佳丘(가구)로 불리어지다가 佳坪(가평)이란 행정상의 동명이 되었으나 마을 전체를 말할 때는 가두들(가구들)이라는 자연마을명을 많이 부르고 있다. 가두들을 칭하는 것은 현재의 1,2,3반만을 말하는 것이며, 4,5반은 원래 다른 마을 이었는데 1970년대 중반에 통합되어 현재의 가평1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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