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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중국의 황제들을 조사한 레포트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1.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동양문명의 이해 강의시간 중 자유주제 레포트 과제에 냈던

목차

Ⅰ. 들어가기 전에 (序論)

* 황제의 칭호 *


Ⅱ. 중국의 황제들 (本論)

1. 초기 제국들

1) 진(秦) ( 시황제 이세황제 )

2) 전한(前漢) ( 고조 ~ 무제 / 소제 ~ 왕망 )

3) 후한(後漢) ( 광무제 ~ 장제 / 화제 ~ 헌제 )

2. 혼돈과 재통일 그리고 황금시대

1) 삼국시대
(1) 위(魏) ( 문제 ~ 원제 )
(2) 오(吳) ( 대제 ~ 말제 )
(3) 촉한(蜀漢) ( 소열제 후주 )

2) 분열의 시대
(1) 서진(西晋) ( 무제 ~ 민제 )
(2) 동진(東晋) ( 원제 ~ 공제 )
(3) 유송(劉宋) ( 무제 ~ 순제 )
(4) 제(制) ( 고제 ~ 화제 )
(5) 양(梁) ( 무제 ~ 경제 )
(6) 진(陳) ( 무제 ~ 후주 )
(7) 수(隋) ( 문제 ~ 공제 )
(8) 당(唐) ( 고조 ~ 현종 / 숙종 ~ 애제 )

3. 혼돈, 외교, 침략

1) 5대
(1) 후량(後粱) ( 태조 ~ 말제 )
(2) 후당(後唐) ( 장종 ~ 폐제 )
(3) 후진(後晋) ( 고조 출제 )
(4) 후한(後漢) ( 고조 은제 )
(5) 후주(後周) ( 태조 세종 )

2) 북송(北宋) 남송(南宋) ( 태조 ~ 흠종 / 고종 ~ 제병 )

3) 원(元) ( 쿠빌라이[세조] ~ 토곤 테무르[순제] )

4. 부흥과 붕괴

1) 명(明) ( 홍무제 ~ 선덕제 )
( 정통제 ~ 숭정제 )

2) 청(淸) ( 순치제 ~ 옹정제 )
( 건륭제 ~ 선통제 )


Ⅲ. 레포트를 마치며 (結論)

본문내용

는다 해서‘隋’로 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587년 그의 보호국으로 강릉(江陵:湖北省)에 도읍을 정하고, 남조(南朝) 양(梁)의 황실 자손이 다스리던 후량(後梁)을 멸망시켰으며, 589년 그의 차남인 진왕(晉王) 광(廣:煬帝)을 행군원수(行軍元帥)로 삼아 남조의 진(陳)을 멸망시켜 통합함으로써, 동진(東晉)의 남천(南遷) 이래 317년에 걸쳤던 중국 분열에 종지부를 찍었다. 문제는 내정에 힘을 쏟아 재정적으로는 긴축정책(緊縮政策)을 취하였으며, 오랫동안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중국의 통일을 추진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장성(長城)을 축조하여 터키계(系) 돌궐(突厥)의 침입에 대비하였으 며, 598년(고구려 영양왕 9)에는 요서(遼西)를 침범한 고구려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황실에서는 문제의 장남 용(勇)이 황태자가 되었으나, 진(陳)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간지(奸智)가 넘치는 진왕 광이 형인 용을 대신해 황태자가 되고 뒤에 즉위하여 양제(煬帝)가 되었는데, 문제는 아들 양제에 의하여 살해되었다고 한다. 양제는 문제의 유업(遺業)을 이어 중국의 남북을 잇는 대운하(大運河)를 완성하고, 남북의 통일을 추진하여 동도(東都:東京)를 뤄양[洛陽]에 조성하고, 토욕혼(吐 谷渾)과 돌궐을 토벌하였다.
또한 611∼614년 돌궐과 손을 잡을 우려가 있었던 고구려에 3차에 걸쳐 대군을 파견하여 원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양제는 중국 통일 후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너무 서둘러 대대적인 토목공사와 원정을 속행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모든 면 에서 과중한 부담으로 고통을 받았다. 특히 고구려 원정 기지에 가까웠던 산둥[山東] 지방 백성들은 그 고통이 더욱 심하였고, 게다가 이 지방은 옛 북제(北齊)와 북주(北周)로 이어지는 나라의 영토여서 북주를 멸망케 한 수왕조에 대한 반감도 높 아서, 반란사건도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다.
617년 타이위안[太原:山西省] 유수(留守) 이연(李淵)은 내란이 격화하여 양제가 있던 강도가 고립되자, 타이위안의 호족들을 끌어모아 군사를 일으켜 장안(長安)을 탈취하고 양제의 손자인 유(侑:恭帝)를 옹립하였다. 그러나 618년 양제가 강도에서 우문화급(宇文化及)에 의하여 살해되자, 이연이 공제로부터 양위받아 스스로 즉위, 당조(唐朝)를 창건함으로써 수나라는 멸망하였다.
당나라가 세워진 뒤에도 양제의 총애를 받던 왕세충(王世充)은 공제의 동생인 월왕(越王:)을 옹립, 수나라의 대통을 잇게 하였으나, 619년 그를 폐위하고 스스로 즉위, 정국(鄭國)을 세움으로써 수나라의 황실은 그 맥이 완전히 끊겼다.

(8) 당(唐) ( 고조 ~ 현종 / 숙종 ~ 애제 )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중국의 통일제국(統一帝 國)으로는 한(漢)나라에 이어 제2의 최성기(最盛期)를 이루어, 당에서 발달한 문물 (文物) 및 정비된 제도는 한국을 비롯하여 동(東)아시아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쳐 그 주변 민족이 정치 ·문화적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삼국체제(三國體制)가 붕괴되고 정치세력 판도가 크게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중기 안녹산(安祿山)의 난(亂) 이후 이민족(異民 族)의 흥기(興起)와 국내 지배체제의 모순이 드러나 중앙집권체제의 동요는 물론 사회 및 경제적으로도 불안이 가중되어 쇠퇴의 길을 밟았다.


3. 혼돈, 외교, 침략
1) 5대
(1) 후량(後粱) ( 태조 ~ 말제 )
양(梁)이라고도 한다. 태조(太祖) 주온(朱溫)은 원래 당말(唐末)의 대유적(大流

참고 자료

· 출판/ 두산동아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앤 팔루던 지음 / 이동진․윤미경 옮김 『중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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