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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중 주생활

저작시기 2006.03 |등록일 2006.11.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의식주에서 집에 대한 사항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으로 구분지어 조사함

목차

Ⅰ.삼국시대의 주택
1)고구려의 주택
2)백제의 주택
3)신라 및 통일신라의 주택

Ⅱ. 고려시대의 주택

Ⅲ. 조선시대의 주택
1.조선시대 전통 주거공간의 형성배경
(1) 인문·지리적 배경
(2) 사상적 배경
2. 조선시대 건축의 구분
(1)계층별 구분
(2) 공간별 구분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삼국시대의 주택
1)고구려의 주택
고구려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중국과는 끊임없이 세력다툼을 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한 나라였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조건으로 인해 고구려는 중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므로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역시 중국과 비슷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시대의 고분인 안악 3호분(安岳三號墳) 벽화에는 부엌간, 고깃간, 마차고, 등 용도에 따라 지어진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용도에 따라 채와 채가 분리된 주거형태는 지금도 중국의 전통 주거형태인 삼합원(三合院), 사합원(四合院) 등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산과 골짜기에 의지하여 집을 지었고, 일반 주택들은 초가였으나 왕궁이나 관아, 사찰들은 기와지붕을 하였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장갱(長坑)을 만들고 여기에 불을 때서 그 열로 겨울을 따뜻하게 지냈다. 여기서 장갱이란, 오늘의 온돌을 말하며, 지금도 중국의 동북지방 등에서 사용하는 캉(坑)과 같은 비슷한 구조였을 것이다.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철제 부뚜막과 도제 부뚜막은 아궁이와 연통이 한 몸으로 이루어제 있는데, 이것을 안악3호분의 벽화에 부엌이 독립되어 있는 것과 연관시켜 보면 이 부뚜막은 난방과는 관계가 없는 취사만의 용도로 이루어져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상류층에서는 난방방법이 중국과 같은 화로를 사용하고 실내가구도 평상, 의자, 탁자 등 입식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2)백제의 주택
백제의 주거 또는 건축에 대한 자료는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신당서 동이전 백제조(新唐書 東夷傳 百濟條)》 의 속여고려동(俗與高麗同) 이란 기록으로 미루어 백제의 주택은 고구려와 별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어질 뿐이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중국 남조(南朝)에서도 불교 및 각종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건축에서도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되는데, 백제인들이 건축한 일본 호류지5중탑과 부여 박물관 소장의 백제 공예탑 전돌, 기와 등의 문양을 통하여 상류주택이나 왕궁의 건축 또한 상당한 수준의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신라가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인 황룡사와 불국사를 조영할 때 백제의 장인(匠人)인 아비지와 아사달을 초빙하였다는 사실은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참고 자료

* 한국 주거역사와 문화 - 백영흠, 안옥희 (기문당. 2003)
* 한국의 집 지킴이 - 김광언 (다락방. 2000)
* 우리의 집 이야기 - 이규태 (기린원. 1991)
* 한국 주거사 - 홍양옥 (민음사. 1992)
* http://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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