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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역 문화 유적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1.2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300원

소개글

서부 경남의 중심지 진주는 예로부터 ‘멋스런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백제의 땅 거열성(居列城) 또는 거타(居陀)였다가 신라 문무왕 때 신라에 복속되었으며, 통일신라에 이르러 강주, 청주라 불리다가 고려 성종 때 진주(晋州)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선 태조 때 진양대도호부(晋陽大都護府)로 승격된 이후, 줄곧 지방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995년 진주시를 가락지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던 진양군을 통합시켰다.
진주의 역사와 명성에 비해 눈에 띄는 역사유물이나 경승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디를 가나 낮은

목차

진주개관
진주성

진주성 안의 유물들

촉석루
의기사
의암사적비
창렬사
김시민 장군 동상
국립진주박물관

본문내용

진주개관
서부 경남의 중심지 진주는 예로부터 ‘멋스런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백제의 땅 거열성(居列城) 또는 거타(居陀)였다가 신라 문무왕 때 신라에 복속되었으며, 통일신라에 이르러 강주, 청주라 불리다가 고려 성종 때 진주(晋州)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선 태조 때 진양대도호부(晋陽大都護府)로 승격된 이후, 줄곧 지방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995년 진주시를 가락지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던 진양군을 통합시켰다.
진주의 역사와 명성에 비해 눈에 띄는 역사유물이나 경승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디를 가나 낮은 산 아래 너른 들판 사이로 강이 흐르는 풍광이 온화하여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덕유산 육십령 쪽에서 흘러온 물과 지라산 천왕봉 쪽의 물줄기가 합쳐진 남강은 진주시의 중심부를 서남쪽에서 동남쪽으로 가르며 낙동강으로 흘러들며, 오랜 세월 진주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아왔다. 그래서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남강을 굽어보는 촉석루와 진주성은 진주에서 가장 첫 번째로 꼽는 명승유적지이다.
고려 때 거란이 쳐들어오자, 강감찬을 도와 진주 출신의 강민첨이 나가 싸웠고, 임진왜란 때는 왜구와 맞서 진주 관민과 의병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런가 하면 민중의식도 높아 고려 신종 때 노비의 신분 해방을 외치며 정방의가 민란을 일으켰고, 조선 철종 때인 1862년에는 지배층의 수탈에 농민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일제하 형평사 운동도 이 곳 진주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공원으로 꾸며진 진주성에는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싸움을 돌이켜 생각해 볼만한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성 안에 들어선 국립진주박물관은 가야의 유물과 유적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된 개성 있는 공간이다.

▷진주성
석성(둘레 1,760m)으로 축조된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이다. 본래 토성이던 것을 고려 우왕5년 (1379)에 석성으로 수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왜란 3대첩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룬 곳이며, 왜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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