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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농민 항쟁

저작시기 2005.11 |등록일 2006.11.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머릿말
Ⅱ. 조선 후기 중세사회의 해체
1. 경제구조의 변화
1) 농업생산력의 발달
2) 상업의 발달
2. 신분제의 동요
3. 사상체계의 변화
Ⅲ. 농민의 저항
1.. 17세기 말 18세기 초 농민저항의 양상
2. 18세기 중·후반의 농민항쟁
3. 19세기 농민항쟁의 성격과 배경
1) 1811년 평안도 농민전쟁
2)1862년 농민항쟁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릿말

조선 후기 즉 17~18세기에 이르러 한국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중세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여러 부문들이 동요되면서 중세사회의 구조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였다. 사회적인 면에서 신분제의 동요, 신분제와 맞물려 중세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었던 경제구조의 변화, 유학자들의 주자학적 사유방식에 대한 이반, 정치적인 면에서 붕당정치의 전개 및 향촌사회에서 새로운 세력의 등장 등 사회·경제·사상·정치의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를 근원적으로 유발하면서 추동하여 간 것은 경제구조의 변화였다. 농업생산력이 발달하면서 토지를 둘러싼 소유관계와 농민의 부담형태가 변하여갔고, 아울러 농촌사회도 재편되어갔다. 또한 농업 이외의 상업·수공업·광업의 부문도 변하여가면서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농민들이 국가에 대하여 지고 있던 부담형태인 전세·공물·신역의 부세체계도 변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각 부문의 변화를 촉진시켜갔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동요를 일으키는 시기였다. 19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조선사회의 변화는 농민들의 중세적 제도의 부정과 대항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세기는 농민항쟁의 시기였다. 농민항쟁은 19세기 이전부터 봉건적 사회모순이 첨예화되는 과정에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항쟁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소극적 경제투쟁에서부터 폭력적 봉기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은 끊임없이 봉건지배체제에 반대하여 투쟁하였다. 이러한 소극적 투쟁에는 소작농민들이 소작료를 빼돌리거나 소작료의 납부를 거부하는 항조투쟁이 있는가 하면, 봉건관료들의 불법적 수탈을 폭로, 규탄하는 와언(訛言)·산호(山呼)·거화(擧火)·투서(投書)·정소(呈訴)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망원한국사연구실 19세기농민항쟁분과, 『1862년 농민항쟁』
. 이와 같은 소극적인 항쟁이 축적되면서 본격적인 농민항쟁은 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불붙기 시작했다. 1811년에 전개된 평안도 농민전쟁과 1862년 임술농민항쟁은 조선후기 봉건사회 해체기의 사회모순 가운데 일어난 대표적인 농민전쟁이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들 농민전쟁은 조선후기 봉건사회의 해체라는 구조적인 원인과 전쟁을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조선후기 중세사회의 구조적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고 이러한 변화가 농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그로 인하여 19세기 농민전쟁이 어떠한 형태로 일어나게 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참고 자료

▶이영학,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지주제의 변동」
▶정석종, 「중세사회의 동요와 해체」
▶오영교, 「1862년 전국농민항쟁」
▶고동환, 「1811~12년 평안도 농민전쟁」
▶장두환, 『1894년 농민전쟁연구2-18·19세기의 농민항쟁』, 역사비평사,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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