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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종파- 수니파와 시아파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1.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페이지 | 가격 1,400원

소개글

이슬람의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를 발표했던 자료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지금 이라크에서 이슬람 종파끼리의 전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목차

이슬람 종파 나뉜 역사적 배경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점
오늘날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갈등

본문내용

무함마드가 세운 이슬람 공동체는 하자즈(메카와 메디나 지역)에서 아라비아인이 세운 최초의 방대한 국가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후, 이 국가는 빠른 속도로 성장·발전했으나, 632년에 교조가 타계함으로써 최초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원로들의 합의로 예언자의 오랜 동료이며 장인인 아부 바크르가 그 후계자(할리파, 또는 칼리프)로 등극하니, 곧 칼리프제의 시작이다. 그는 신의 계시를 받는 예언자의 기능을 제외하고, 종전까지 무함마드가 누렸던 모든 권한을 계승하였다. 아부 바크르는 교조의 사후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뒤, 그 기세로 아라비아 반도 전역의 통일에 박차를 가했다.
무슬림들은 애초에 이 두 강국들을 정복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으며, 단지 베두윈들의 관습인 약탈을 하기 위해 이 두 지역을 침략한 것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가운데 아부 바크르가 사망하고 그 후임으로 오마르가 칼리프를 계승하여 이슬람 제국의 실질적인 건설자가 되었다.
이슬람 신앙의 기치 아래 단결된 아라비아족의 대정복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칼리프 자리를 놓고 갈등이 일어났고, 또 정복지 거주 아라비아인과 아라비아 반도 거주 아라비아인 사이, 즉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알력 등이 얽히게 된 것이다. 오마르는 오직 정복에만 여념이 없었으므로, 중앙과 지방의 경제적 이해 관계에서 파생하는 알력의 원인이 누적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페르시아 출신의 노예에게 피살된 후, 오스만이 칼리프로 추대되었다. 제 3대 칼리프인 오스만은 본래 부유한 상인으로,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우마이야 씨족 출신이다. 이 씨족은 무함마드의 이슬람에 처음부터 적대적이었으나, 메카가 함락된 후 마지못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그리하여 제 1·2대 칼리프 선언 시에는 그 지위가 약화된 관계로 사회적·경제적 비중에 맞는 발언권은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오스만은 씨족의 의사와는 반대로 일찍부터 무함마드를 추종하여 신임받게 되어 그의 가까운 교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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