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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포로수용소 유적지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1.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거제개관

거제 포로수용소
포로수용소 설치 배경
수용인원
포로관리의 성격
포로의 소요와 폭동-거제도로 옮겨진 포로문제
저항 운동의 시작
송환심사에 대한 항거, 폭동
돗드 포로수용소장 피랍
반공포로의 투쟁
반공포로의 학살사건
포로의 분리 분산작전
포로의 송환-거제도 포로수용소 폐쇄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본문내용

▷거제 포로수용소
포로수용소 설치 배경
일찍이 포로의 수가 증가하고 그들을 수용․관리하는 문제가 어려워질 조짐이 보였을 때, 유엔군사령부는 그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포로를 분산시켜야 할 필요성과 공산포로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된 대책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지고 육지와도 격리된 섬으로 포로 를 옮겨 놓는 방법이었다. 이때 유엔군사령부가 수용소 후보지로 생각한 섬이 제주도였다. 그러나 결국 거제도가 포로수용소 적합 지역으로 판단되었는데 그 이유는 ①(섬이기 때문에) 포로 관리에 최소의 인력과 경비가 소요될 것이다. ②급수가 용이하다. ③포로들이 먹을 식량을 재배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장소가 있다는 점 등이었다.

수용인원
포로수용소가 이전된 후로 계속되는 포로의 이송을 통해 거제도에는, 통계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17만 명에 이르는 전쟁포로들이 모이게 되었으며, 포로를 경비하는 부대병력과 행정인원 등이 합쳐져서, 자체 인구 약 10만 명의 세배 이상이나 되는 사람으로 섬이 포화 상태가 된 듯 하였다. 이렇게 해서 다음 해인 1952년 포로의 분리, 분산 작전에 의해 이곳에 있던 대부분의 포로들을 다른 여러 수용소로 옮기게 될 때까지 약 1년 남짓 동안 거제도는 포로수용소의 주 무대가 되었다.

포로관리의 성격
전쟁 전 기간을 통하여 북한 및 중공군 포로에 대한 한국군 및 유엔군 측의 관리 및 대우의 실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모든 수용소의 위치도 공개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백색 또는 황색으로 PW표지가 되어 있어서 수용소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가 이 표지를 관측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공산군 측의 포로 관리의 실상이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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