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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출산의례에 나타난 상징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1.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0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조선시대 출산의례에 나타난 상징을 왕실과 민간으로 구분하여 작성한 학부졸업논문입니다.

목차

1.서론
1)산속(産俗)

2. 민간인들의 출산의례
1) 산후 의례
(1) 백일
(2) 돌

3. 왕실의 출산의례
1) 왕실의 태교
2) 출산전담기관, 산실청(産室廳)과 호산청(護産廳)
3) 원자의 탄생과 출산풍속
(1) 원자 탄생을 축하하는 특전
(2) 복을 기원하는 개복신초례(開福神醮禮)
(3) 장수를 기원하는 권초례(捲草禮)
(4) 태를 씻고 안치하는 의식, 세태와 안태
(5) 초유보다 먼저 먹인 황연감초탕
(6) 삼칠일 동안 외인의 궐 출입을 금함
(7) 백일잔치
(8) 원자의 돌잔치 풍경

4. 출산풍속과 신앙의 관계
1) 산전풍속(産前風俗)
(1) 기자신앙
(2) 삼신신앙
(3) 태몽과 태교

2) 산후풍속(産後風俗)
(1) 산바라지
(2) 태의처리
(3) 금줄

5. 결론
1) 민간인들의 출산의례와 왕실의 출산의례의 비교
2) 왕실의 출산풍속과 신앙의 관계

본문내용

1. 서론

1)산속(産俗)

출산의례는 한 개인의 생이 시작되는 의례로서 통과의례의 첫 번째 과정이다. 아이의 출산과 관련하여 산속(産俗)이라고도 한다. 잉태하기를 빈손하는 일부터 아이가 태어난 만 1년 되는 돌까지의 과정에 나타나는 기원, 금기, 의례, 주술 등을 포함하는 민속을 말한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혼인을 자녀 출산의 수단으로 여겼던 까닭에 혼인한 여성은 아이를 낳는 일을 가장 큰 의무인 동시에 소망으로 생각하였다. 또 이 일을 당사자뿐만 아니라 온 가족과 문중이 바라는 일이기도 하였다. 특히 가계를 계승할 수 있는 아들을 낳는 것이 중요한 효도의 한 가지였다. 조선조에서는 아들을 낳아야만 후손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알았다. 심지어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은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한 가지를 어긴 것이 되어 시집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 남편이 첩을 두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신부를 고를 때 성품이나 외모 외에 아이, 특히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는가를 미리 알아보기도 하였다. 여성은 잉태할 수 있는 기간을 헤아리는 교육을 미리 받았고, 혼인 후에도 이를 신랑에게 알려서 합방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그만큼 출산은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민간인들과 왕실의 출산의례를 살펴보면서, 출산의례와 풍속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2. 민간인들의 출산의례

1)산후 의례

아기가 태어난 뒤 7일 째를 첫이레, 14일째를 두이레, 21일째를 세이레라 부르고, 그 때마다 특별한 의례를 치른다. 7일을 하나의 단위로 삼아 특별한 듯을 부여하는 풍속은 예로부터 지켜왔던 것으로, 3이나 7을 좋은 수로 여긴 까닭이다. 첫이레는 삼신상을 차려놓고 삼신에게 감사하는 동시에 아기의 명을 빈다. 또, 이 날 아기의 강보를 벗기고, 깃 없는 옷을 입히며, 동여매었던 소매 끝도 풀어준다. 할아버지는 이 날 처음으로 손자를 보게 된다. 이로써 아기는 가족과 첫 대면을 하는 셈이다. 이웃과 친지에게 특별한 음식을 대접하는 외에 아기에게 실꾸리를 채워주거나 곁에 놓아둔다. 실은 장수의 상징물이다.

참고 자료

홍순석 외, 전통문화와 상징 1, 강남대학교 출판부
김문식, 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기획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주강현,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한겨레 신문사
이원섭, 태교보감, 동방미디어
김문식, 궁중의 출산과 태실, 전통과 현대 15
김호, 조선후기 왕실의 출산풍경(조선의 정치와 생활),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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