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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창작을 위한 진통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1.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3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국문화통사 내용을 발표한 것입니다.

목차

11.7.1. 민속극, 창극, 신파극의 위치
(1) 민속극
(2) 창극

11.7.2. 희곡 작품의 출현 양상(신파극과 희곡 작품의 거리)
(1) 1910년대 전후 일제의 연극정책
(2) 신파극의 정착과정
1) 신파극의 초기 상연 양태
2) 신파극의 정착과정
(3) 신파극의 상연방식과 희곡사적 의의

11.7.3. 학생극운동과 김우진
1. 다층적 폭력과 한 여성의 몰락-<이영녀>
2. 모성회복으로 인한 새로운 인간의 탄생-<난파>
3. 구원상실과 목적의식의 혼란으로 현실도피한 지시인의 비애-<산돼지>

11.7.4. 토월회 시기의 작품
(1) 1920년대 연극계 상황과 토월회 연극운동
(2) 토월회의 성립
(3) 토월회 연극의 흐름
(4) 토월회 시기의 작품
① 박승희 중심의 토월회
② 홍사용
③ 김동환
(5) 토월회 연극운동의 한계와 연극사적 위치

11.7.5. 김정진과 김영팔
(1) 1920년대 연극의 특징
(2) 김정진(1886-1936)
(3) 김영팔(1902-1950)

본문내용

11.7. 희곡 정착을 위한 진통
11.7.1. 민속극, 창극, 신파극의 위치
(1) 민속극
탈춤, 꼭두각시놀음 등의 민속극은 시련을 겪으며 1930년대 까지 공연이 지속되었으나 연극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극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시비하는 논설에서 민속극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연극론 또는 희곡론에서는 민속극을 부정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거론하지도 않았다. 상층의 관여 없이 민중문화로 자라나 존재 자체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탓에 정당한 평가를 기대할 수 없었다.
개화지식인들이 일본을 통해 서양연극을 받아들여 문화구조의 오랜 결함을 해결하고 근대 문화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과업을 수행하고자 하면서 연극이라고는 없던 곳이어서 서양연극 이식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1970년대에 와서야 그런 미몽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 전통의 단절
소설과 시에 비해 희곡면에서는 이면, 표면으로 전통의 단절이 분명히 나타났다. 민속극은 기록 이전의 구비문학이라는 점에서 민요와 같은 조건을 갖추고 전승의 위기를 함께 겪었다. 농민의 노래인 민요는 농본사회 애민사상의 명분에 근거들 두고 근대시가 잃어버린 고향이라고 평가되고, 무뢰뵈가 공연하는 민속극은 반항의 산물이어서 식자층이 외면했던 전례가 후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31운동 이후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한 시민이 민중문화의 저력은 외면하고 사대부 문화가 전통의 전 영역에 해당한다고 오해한 탓에 민속극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려는 생각 하지 못했다. 게다가 좌파가 연극은 서양에서 수입해오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여겨 근대극 의 수입품 교체에 열을 올리면서 단절의 폭 확대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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