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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교육론

저작시기 2005.08 |등록일 2006.11.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9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교육학에 나오는 루소의 교육론 입니다.

목차

Ⅰ. 배경

Ⅱ. 에밀

Ⅲ.루소의 교육사상

Ⅳ. 사회 계약론

Ⅴ. 현대적 이해

본문내용

Ⅰ. 배경

1. 시대적 배경

1)루소가 살던 시대 전반에 계몽사상에 대하여
계몽사상은 17.18세기 유럽의 지적운동으로 신, 이성, 자연, 인간 등의 개념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한 사상운동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예술, 철학, 정치에 혁명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계몽주의의 핵심은 이성중신이며, 이성의 힘에 의해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 지식, 자유, 행복이 합리적 인간의 목표라고 보았다.

2)계몽사상과 루소
장 자크 루소는 자신이 살던 계몽사상시대에 주장된 합리주의적 통념, 즉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진보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공격하고, 낭만주의적 감수성을 제창하여 지배적인 합리주의에 대항시켰으며, 근대적 정치의 기치위에 민주주의 정치와 전체주의정치라는 상호 대립하는 슬로건을 둘 다 처음으로 적어 넣은 혁명적 사상사였다
격동의 세기였던 18세기 프랑스 사상계의 이단자로 기억되는 장 자크 루소는 171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했지만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루소는 1750년「학예론」을 써서 명성을 얻은 후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인간과 세계의 창조 모형을 제시했던 루소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중시했던 계몽 철학자들의 백과사전파와 대립하게 됨으로써 혹독한 비난과 핍박을 받게 된다. 주변의 박해로 방랑하던 그는 모반과 음모의 희생자라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을 변호하는 집필 활동을 계속 해나가다 생을 마감했다.
합리와 낙관이 지배하던 18세기의 분위기 속에서 끝까지 자연을 노래하고 감성의 순수한 꿈을 추구했던 루소의 사상은 여러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고,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 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이는 문명의 규제와 억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사회계약론」「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고백록」등이 있다.

2. 생애

호반의 자유도시 제네바(Genève)에서 칼뱅교도 가문으로 시계 점을 운영하던 `자유시민` 이 자크 루소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장-자크는 출생 9일 만에 어머니 쉬잔 베르나르를 여의고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시작하게 된다. 보통 철학자의 평온한 일대기와는 결코 흡사하지 않은 그의 삶의 역정은 루소 자신이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고 자세하게 그의 『고백록』에 기술해놓고 있다.
루소가 열 살이 되던 해에 그의 일곱 살 위의 형은 이미 집을 떠나고 없었으며 자존심 강하고 다혈질이었던 그의 아버지마저 어떤 프랑스 퇴역군인과 싸움을 벌려 고소를 당하게 되자 제네바를 영영 떠나버렸기 때문에 그는 졸지에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린 루소는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한때 금속가공 공장의 동판 공 밑에서 견습생으로 일을 배우게 되었지만, 그 선생의 난폭함을 피해서 1728년 16세의 나이에 고향 스위스를 떠나 프랑스로 향함으로써 긴 방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735년부터는 그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바랑부인에게 정착하게 되는데, 그녀의 후원을 받아 독학으로 음악과 라틴어 그리고 철학적 지식을 습득하였으며 또 나중에는 이 13세 연상의 여인과 정부로서 수년간 함께 하였다.
1741년 30세의 루소는 드디어 꿈꿔왔던 도시 파리로 가서 디드등 소위 `백과전서파`와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고안해낸 새로운 악보표기법으로 명성을 얻어 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음악교사나 악보를 베끼는 필경사로서 힘든 삶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또 그는 잠시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사의 비서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대사와의 갈등 끝에 일년 만에 파리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루소는 실의에 빠졌던 이 시기에 잠시 묵었던 여관의 하녀로 만나 30년간 그의 반려가 되어준 테레즈 르바쇠르와의 사이에서 다섯 명의 자녀를 보았다. 그러나 교육이론서의 저자가 정작 자신의 자식들을 경제적인 이유로 모두 고아원에 보낸 일화는 `이론뿐인 교육이론가`로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파리에서 루소는 1750년 38세 때에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논문 『학문예술론』이 당선되어 일약 유명해졌다. 이렇게 `음악가 루소`가 우연한 기회에 철학을 하게 된 것을 빗대어 엘베 티우스는 `뜻밖의 철학자`라 말했지만 정작 루소 스스로는 자신을 `잘못된 철학자`라 칭하고 있다. 어쨌든 그 후 `철학자 루소`는 『백과전서』에 기고하기도 하면서 같은 아카데미에서 현상 공모한 과제에 응모하기 위해 『인간불평등기원론』(1755)을 집필하였다. 그 외에도 연애소설인 『신 엘로이즈』(1761), 정치이론서 『사회계약론』(1762), 교육소설 내지 교육이론서인 『에밀』(1762) 등과 같은 주요 저작들을 내놓았다.
『에밀』은 출간되자마자 그 종교적 내용과 관련하여 스위스의 신교와 프랑스의 구교로부터 모두 비판을 받게 되었다. 파리의회가 이 책을 압수하고 저자의 체포령을 내림에 따라 루소는 프랑스를 탈출하여 스위스로 도피했지만 제네바당국도 『에밀』과 『사회계약론』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책을 소각하자 그는 유럽 각지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심지어 추적 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기까지 하였다. 이 기간동안 루소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파리 대주교 『크리스토프 드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1763)와 『산에서 보내는 편지』(1764)를 써야 했으며, 1770년에야 비로소 파리에 돌아올 수 있도록 허가됨으로써 망명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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