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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이해]고려의 경제와 토지제도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1.05 | 최종수정일 2018.06.1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7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고려의 경제구조와 토지제도에 대해서 완벽히 분석 조사한 자료입니다

목차

1.들어가면서
2.전시과 제도의 성립과 개정
3.전시과의 토지분급방식
4.공전,사전,민전의 개념과 유형
5.나오면서

본문내용

(1) 시정전시과
이와 같은 과도기를 거치면서 전시과 체제는 경종 원년(976)에 처음 만들어 졌는데 일반적으로 시정전시과라고 부른다.

경종 원년 11월 처음으로 직산관(職散官)의 각 품 전시과를 정함에, 관품의 높고 낮음을 논하지 않고 다만 인품(人品)으로써 정한다.
『高麗史』권 78, 식화1, 전시과
위 사료에서 인품으로만 정한다고 하였지만 사실 사색공복(四色公服)이 기준이 되었다. 사색공복은 자삼(紫杉)․단삼(丹衫)․비삼(緋衫)․녹삼(綠衫)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사색공복에 의한 구별은 관품의 표시임으로 시정전시과는 관품과 인품을 병용한 급전제(給田制)로 보인다.
시정전시과는 자삼층(紫衫層),문반(文班)에 단삼층(丹衫層)․비삼층(緋衫層)․녹삼층(綠衫層),잡업(雜業)에 단삼층․비삼층․녹삼층, 무반(武班)에 단삼층으로 구분하여 토지가 지급되었다. 여기서 자삼층만이 18품 체계로 되어있고, 나머지는 문반․무반․잡업별로 나누어지고 그 내부에서 다시 공복제에 의해 구분되었다. 광종 11년에 제정된 공복제 규정에 의하면 자삼은 원윤(元尹)이상이라는 관계(官階)를 기준으로 한 데 대해 단삼은 중단경(中壇卿),비삼은 도항경(都航卿),녹삼은 소주부(小主簿)와 같이 관직(官職)을 가지고 구분하고 있다. 관계 또는 관직의 승진으로 문반․무반․잡업의 단삼 상한을 넘어설 경우 자삼층에 편입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삼층은 관직을 가진 관료층을 포함하면서 원윤(元尹) 이상의 관계만을 가진 호족층을 포함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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