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1.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교양 체육시간에 배드민턴 듣다가 정리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했으니 부담없이 읽으실수 있을거예요

목차

Ⅰ. 들어가는말
Ⅱ. 본말
Ⅲ. 나오는 말

본문내용

3.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세계 제패
1983년은 김문수 선수와 복식조로 인연을 맺은 뜻 깊은 해였다. 당시 이은구 선수는 그보다 6년 선배로서 앞으로 복식조로 호흡을 맞추는 데에는 연차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김문수 선수와 조를 이루게 되었고, 함께 출전한 첫 대회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3최 월드컵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그들은 이때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10년지기 파트너의 기틀이 되었다. 물론 김문수 선수와 복식조 외에 단식에서도 꾸준한 활동으로 국내에서만 106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때부터는 주로 진해에 있는 선수촌에서 훈련하게 되었고, 이제부터의 목표는 ‘86아시안게임 우승’ 이라는 지상과제를 안고 끊임없이 연습하였다.
아시안게임에 앞서 ‘84 일본오픈’과 3월의 ‘전영오픈’ 등에서 우승하며 한국이 배드민턴계의 강국임과 그들의 이름을 날리 수 있었고 전 세계 각종 오픈대회에 초청을 받게 되었다. 특히1985년 캐나다 캘리거에서 열린 ‘제4회 세계선수권대회’ 에서의 우승은 그의 배드민턴 인생에 하나의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김문수 선수와의 복식은 가장 큰 우승 기대주로 주목을 받아 모든 전력을 쏟았고 이는 마침내 한국 배드민턴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더욱이 유상희 선수와의 혼합복식조에서도 예상치 않은 승승장구로 해외 원정에서 사상 첫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캐나다에서 이러한 우승은 캐나다에 있는 교민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었고, 한국인으로서는 역사에 남을 커다란 쾌거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귀국 후 세계선수권 대회 첫 우승을 계기로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받는 영광을 안게 되었고, 이때부터 체육연금도 함께 지급되었다. 이후 드디어 ‘86 서울 아시안게임’ 이 개최 되었고, 남자 단체전에서 숙적 인도네시아 대표팀과 중국 대표팀을 연파하며 우승을 일구어냈다. 또한 남자 복식이외에 정명희 선수와 호흡을 맞춘 혼합복식에서 마져 우승하며 생에 첫 국제대회 3관왕의 영예를 얻게 되었고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참고 자료

1. ‘셔틀콕의 황태자 박주봉의 배드민턴’ 박주봉 삼호미디어, 2004,
2. 박주봉 선수 홈페이지 http://www.parkjoobong.com/
다운로드 맨위로